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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따라 땅끝까지,  해남의 여름

2026.06.26. 13:3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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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동선을 짜다가 알아챘다. 이번 해남행의 목적지 다섯 곳이 모두 물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이름에 호수를 품은 바다, ‘물의 그릇’이라는 학명을 지닌 꽃의 군락, 공룡 발자국 곁의 물놀이장, 호숫가의 바닥분수, 그리고 물살이 운다는 길목에 선 호텔까지. 해남의 여름은 온통 물이다.

호수를 닮은 바다
땅끝송호해수욕장

송호(松湖)라는 이름부터 뜯어 보자. 소나무 송에 호수 호. 바다에 호수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과장이 아니다. 길이 약 2km, 너비 200m에 달하는 백사장의 모래는 곱고 부드러우며, 물은 맑고 수심은 얕다. 물결은 이름 그대로 호수처럼 잔잔하다. 아이 손을 잡고 들어가기에 이만한 바다가 드물다.

수평선도 심심할 틈이 없다. 서화도, 양도, 어불도, 어룡도. 크고 작은 섬들이 점점이 떠 바다에 깊이를 만든다. 기억해 둘 것은 이 백사장이 서쪽을 바라본다는 사실. 섬들 사이로 노을이 짙어지는 해 질 녘이면, 송호는 하루 중 가장 화려한 표정을 짓는다.

이름의 나머지 절반은 소나무가 책임진다. 도로와 백사장 사이를 해송림이 병풍처럼 막아선다. 수령 100~200년의 해송 600여 그루가 제방을 따라 약 1km 이어지는 전라남도 기념물 솔숲이다. 숲 사이로는 산책로가 나 있고, 코리아둘레길 서해랑길도 이 곁을 지난다. 솔숲의 그늘은 통째로 거대한 파라솔이다. 자리 경쟁을 벌일 필요가 없는.

올여름 송호는 7월 중순 개장을 앞두고 있다. 백사장에서 갈산마을을 지나 한반도 육지의 끝점인 땅끝탑까지 어렵지 않게 닿을 수 있다는 점도 송호만의 매력. 그리고 이 잔잔한 바다는 품은 이야기도 깊다. 2023년 송호 앞바다에서는 고려시대 고선박 ‘송호리1호선’이 발견됐다. 수백 년 묵은 배 한 척을 가만히 품고도 호수처럼 고요했던 바다. 송호의 잔잔함은 생각보다 훨씬 오래된 것인지도 모른다 .


산 능선이 수국으로 물드는 순간
포레스트수목원

수국은 흙의 성질을 읽는 꽃이다. 산성 토양에서는 푸르게, 알칼리성에서는 붉게 핀다. 실제로 정원을 걷다 보면 구역마다 수국의 빛깔이 묘하게 다른데, 흙이 구역마다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뜻이다. 수국 400여 품종, 8,000여 그루가 산 능선을 따라 군락을 이룬 해남 현산면의 포레스트수목원. 국내 최대 규모의 수국정원에서는 흙이 그린 거대한 수채화를 만나게 된다.

포레스트수목원은 2019년 문을 연 해남 최초의 민간 사립수목원이다. 약 20만 평방미터 부지에 식물 1,400여 종이 자라며, 산림청 산림생명자원 관리기관이자 국립수목원이 지정한 국가희귀·특산식물 보전기관이기도 하다. 그러나 격식 있는 직함보다 와닿는 것은 산책로의 풍경이다. 길을 따라 수국이 끝없이 펼쳐져, 걷는 내내 동화 속 정원에 들어선 기분이 든다. 수국 숲길 사이로 모형 레일을 깔아 둔 ‘수국 기찻길’이 이곳의 시그니처 포토존. 기차는 다니지 않지만, 레일 위에 서는 순간 누구든 그림이 된다.

수국의 학명 히드란게아(Hydrangea)는 그리스어 ‘물의 그릇’에서 왔다. 이름값을 하느라 물을 잔뜩 머금는 장마철에 절정을 맞는 꽃이다. 절정은 6월 하순부터 7월 초. 지난 6월12일 막을 올린 ‘땅끝해남 수국축제’는 7월6일까지 계속된다. 축제가 끝난 뒤라도 아쉬워할 일은 아니다. 만생종 수국이 7월 중순까지 산 능선을 물들인다.


공룡 발자국 곁에서 물장구를
해남공룡박물관

중생대 백악기, 해남 우항리는 얕은 호숫가였다. 공룡과 익룡과 새가 같은 물가를 거닐었다. 세 종류의 발자국이 같은 지층에 나란히 찍힌 채 발견된 것은 세계에서 이곳이 처음이다. 우항리 화석 산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고,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오른 이유다. 2007년 그 위에 들어선 해남공룡박물관은 연 20만 명이 찾는 국내 최대 공룡 전문 박물관이 됐다.

전시의 자존심은 알로사우루스다. 아시아 최초이자 국내 유일의 진품 화석을 코앞에서 들여다볼 수 있다. 모형이 아니라 진짜 뼈라는 사실 하나로 관람객들의 눈빛이 달라진다. 발자국을 그대로 덮어 보존한 보호각들도 마찬가지다. 한때, 이 너른 들판을 거대한 공룡들이 활보했다는 사실이 수많은 발자국 화석 앞에서 비로소 실감 난다. 야외 공룡공원에서는 움직이는 공룡 조형물과 놀이시설이, 실내에서는 어린이 체험 시설이 기다린다. 공룡을 좋아하는 아이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루를 보낼 만한 공간이다.

그리고 여름의 공룡박물관에는 비장의 무기가 있다. 본관 앞 공룡 물놀이 체험장이다. 슬라이드 두 종류에 물놀이 종합놀이대, 바닥분수까지 갖춰 작은 워터파크라 불러도 손색없는 규모. 3~13세 전용으로, 박물관 입장객이라면 무료다. 해마다 7월 초 문을 열어 여름 내내 운영해 온 곳으로, 올여름도 개장을 앞두고 있다. 수영복과 아쿠아슈즈, 수영모는 필수, 크록스·샌들은 입장 불가이니 트렁크에 미리 챙겨 넣을 것.


철새 떠난 호수의 여름
고천암자연생태공원

사실 고천암은 가을과 겨울에 더 유명하다. 둘레 14km의 고천암호와 165만여 평방미터에 달하는 국내 최대 갈대 군락지라서 그렇다. 겨울이면 가창오리 떼가 날아들어 하늘을 뒤덮는 군무로 이름난 철새 도래지다. 전국 각지에서 탐조객들이 카메라를 메고 모여드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이 겨울의 명소가 여름에는 전혀 다른 표정을 짓는다는 사실은 의외로 덜 알려져 있다. 영화 <서편제>와 <살인의 추억>이 이 갈대밭을 배경으로 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고천암 주변에 자연생태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여름이면 안뜰광장의 바닥분수가 물기둥을 쏘아 올리고, 아이들이 그 사이로 뛰어든다. 분수 곁에는 물놀이 시설과 생태 놀이터가 모여 있어 다채롭게 즐기기에도 좋다. 어른들의 자리는 따로 있다. 족욕 시설이다. 가운데를 수족관처럼 꾸며, 물고기가 유유히 헤엄치는 모습을 내려다보며 발을 담그는 구조다. 발끝의 더위가 풀리는 동안 눈도 함께 쉰다.

물놀이가 전부는 아니다. 초여름의 연꽃 습지는 이제 막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절정은 7월. 겨울의 금빛 대신 초록으로 출렁이는 갈대 탐방로를 지나 솟대화랑과 습지원, 새소리숲을 거닐다 보면 길 끝에 철새탐조대가 나온다. 지금은 비어 있는 탐조대에 서서 반년 뒤의 하늘을 그려 본다. 여름에 와 본 사람만이 겨울을 기약할 수 있다.


우는 바다 곁에서 마무리하는 하루
호텔 울돌소리

울돌목은 소리의 바다다. 거센 물살이 암초에 부딪혀 우는 소리를 낸다고 하여 ‘울돌’이다. 1597년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을 일군 바로 그 해협인데, 명량(鳴梁)이라는 한자 역시 ‘우는 물목’이라는 뜻이다. 그 바다 곁에 지난해 10월, 같은 이름의 호텔이 문을 열었다, 호텔 울돌소리.

울돌소리의 전신은 우수영유스호스텔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역특화형 친환경 숙박 공모를 통해 리모델링을 거쳐 다시 태어났다. 객실은 32개로, 작은 몸집이지만 성적은 다부지다. 해남군에 따르면 문을 연 지 넉 달 만에 객실 점유율이 업계에서 손익분기 기준으로 통하는 70% 선을 넘어섰다고. 전라남도의 ‘블루 워케이션’ 대상지로 지정되기도 해, 노트북을 들고 내려와 머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 호텔의 백미는 루프톱이다. 옥상에 오르면 울돌목이 한눈에 들어오고, 해 질 녘이면 온 바다가 노을빛으로 물든다. 물살을 더 가까이서 보고 싶다면 바로 앞 우수영관광지의 울돌목 스카이워크로 향하자. 스카이워크에 서면 발아래로 소용돌이치는 물살이 지나간다. 이순신 장군의 전략이 왜 하필 이 물목에서 통했는지, 물을 내려다보는 순간 절로 수긍하게 된다. 명량대첩해전사기념관과 울돌목해상케이블카도 곁에 있으니 발길 닿는 대로 둘러보면 된다.

Editor’s Tips
당신의 여름에 땅끝으로 향할 이유

땅끝은 끝이 아니다. 적어도 여름에게는 그렇다. 호수를 닮은 바다, 물을 머금고 피어나는 꽃, 백악기 호숫가에 찍힌 발자국, 철새가 두고 간 호수, 그리고 우는 바다까지. 해남에서는 다섯 갈래의 물이 저마다의 여름을 준비하고 있다. 올여름 계획이 아직 비어 있다면, 답은 정해져 있다. 땅끝까지 내려가는 것이다.


글·사진 김정흠 에디터 강화송 기자 제작지원 해남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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