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여름은 수국의 개화와 함께 시작된다. 돌담 아래 혹은 우물가에 풍성하게 피어나 뜨거운 햇볕과 쏟아지는 빗줄기도 후덕하게 받아 내는 서민의 꽃. 토양의 성분에 따라 붉은색과 파란색 계열로 피어나는 생리적 특성에 착안해 품종개발이 이뤄지고 또 산수국과 탐라수국 등 향토 수종의 아름다움이 더불어 빛을 발하게 되었다. 제주에는 휴애리생활공원, 혼인지, 보롬왓 등을 비롯한 내로라하는 수국 명소가 많다. 그 틈을 비집고 꽃 애호가들 사이에 당당히 수국 정원을 대표하는 스폿으로 떠오른 곳이 있다. 서귀포시 안덕면에 자리하고 있는 카페, ‘마노르블랑(Manor Blanc)’이다.
환상의 꽃 대궐, 마노르블랑 수국축제
초여름 마노르블랑의 정원은 온통 수국 대궐이다. 마노르블랑은 제주의 서쪽, 산방산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자리에 위치하는 정원 카페다. 세계 여러 나라의 수국이 7,000여 본이나 식재되었으니 그 화려함을 말로 다 할 수 없다. 엔들리스서머 오리지널, 불룸스타가 시즌의 시작을 알리고 나면 마이크로필라 계열, LA드림, 서머러브, 도피오로사 그리고 수십여 종의 산수국과 탐라수국이, 그리고 유럽 수국목까지 제주의 여름을 차례대로 장식한다. 핑크 애너벨, 루비 애너벨, 떡갈잎 수국 등 쉽게 보기 힘든 종도 가득하다. ‘미스 사오리’라는 수국도 꼭 빼놓지 말고 봐야한다. ‘미스 사오리’는 일본 수국 개발자가 자신의 아내를 너무나도 사랑해 그녀의 이름을 따와 지었다고 한다. 흰색 잎에 분홍색 테두리가 매력적이다.
마노르블랑이 탐방객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데는 정원을 둘러싼 배경도 한몫한다. 형제섬, 사계 앞바다의 환상적인 뷰를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바위와 언덕 등 자연 지형을 활용해 만든 피아노 정원, 곶자왈 정원, 100m 수국 길 등 여러 갈래로 나뉜 수국 꽃길은 어느 곳을 걸어도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1만 6,500여 평방미터의 부지는 동산을 타고 솟아 있음에도 매우 아늑한 느낌이 든다. 탐방객들은 언덕 위에 놓인 오솔길을 따라 걸으며 꽃과 한몸이 된다. 본격적인 여름 시즌의 귀환, 마노르블랑의 수국축제는 7월 말까지 계속된다. 수국은 5~8월 사이에 피어나며 6월 말부터 7월 초까지 절정에 이른다. 참고로 제주도는 우리나라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어 노지 수국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빨리 개화하는 곳이기도 하다. 빛깔도 모양도 다채로운 수국 꽃밭 사이에는 커피와 차를 마시며 쉬어 갈 수 있는 테이블이 있다. 옛 유럽의 귀족들이 정원에서 티타임을 갖는 듯한 기분을 누려 보자. 사진 찍기 좋은 포토존도 많아 한 바퀴 둘러보는 데만 1시간이 거뜬히 소요된다. 적당히 여유로운 일정으로 둘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하얀 저택에 핀 수국
마노르블랑은 하얀 저택이라는 뜻이다. 이름에 걸맞은 화이트톤의 유럽풍 건물은 카페 공간이다. 탐방객들은 실내를 통해 정원으로 들어서게 되는데, 고풍스러움에 반해 일단 멈춰 서고 또 둘러보게 된다.
매킨토시 모노불록 시스템과 프로악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뮤직이 격조를 돋우는가 하면 벽면을 가득 메운 빈티지 티웨어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마이센, 드레스덴, 야드로, 헤렌드 등 유럽의 명품 디자인이 있는 마노르블랑은 티웨어 애호가들에게는 성지와 같은 곳이다.
사실 티웨어 전시장이라고 소개해도 모자람이 없을 컬렉션이다. 꽃이 가득 만개한 프랑스의 어느 고택에서 티를 마시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카페 한켠에는 수국 파우치, 방향제 등 제주 관련 소품도 가득 진열되어 있다. 마노르블랑의 커피는 스폐셜티 원두만을 고집한다. 향긋하고 깊은 풍미가 아른거리는 꽃잎과 조화롭다. 밀크티, 생과일 라떼 등 예쁘고 맛있는 메뉴도 가득하다.
마노르블랑은 제주에서 인증숏 명소로도 손꼽힌다. 9시 개장과 동시에 찾아든 탐방객들은 스페셜티 커피나 한라봉 착즙 주스를 들고 정원으로 나선다. 곳곳에는 포토존이 마련돼 있다. 저마다의 색감을 자랑하며 뜰을 채운 꽃들은 물론 바위, 의자, 피아노, 그네 그리고 노란 하귤나무까지도 피사체를 돋보이게 한다. 참고로 잔디정원에서는 피아노 연주 버스킹을 즐길 수도 있다. 제주 날씨의 오묘함은 산방산 뷰에서 나타난다. 때론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또 다른 날에는 안개에 싸인 신비한 모습을 연출한다.
마노르블랑은 ‘김환영, 주민란 부부’가 열정과 정성으로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부부는 2013년 육지 생활을 청산하고 제주에 내려왔다. 극심한 사업 스트레스로 어려움을 겪었던 김환영씨에게 제주는 꿈과 같은 곳이었다. 황무지 동산을 매입하고 척박한 땅을 개간할 때만 해도 부부에겐 농사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경험도 없었다. 수많은 시행착오는 당연지사, 매년 쏟아 부은 비용도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던 부부가 솜씨를 발휘하게 된 것은 제주의 기후와 토양을 이해하게 되면서부터다. 100여 종이 넘는 수국의 품종군 역시 환경에 맞게 선별되고 흙에 적응한 것들이다. 두 사람의 감각에 억척스러움이 더해지니 마노르블랑은 더욱 단단해졌다.
수국이 지나면 핑크뮬리, 애기동백, 귤나무가 이어지고 그 사이 사이에 백일홍과 팜파스그라스와 삼색버드도 멋스럽게 피어난다. 마노르블랑에는 10km가 훌쩍 넘는 배관이 촘촘히 깔려 있다. 작물에 적절한 양의 수분을 공급하기 위해서다. 늦봄부터 여름까지는 수국, 가을에는 핑크뮬리, 겨울철에는 동백이 피어난다. 4계절 플라워가든으로 재탄생한 마노르블랑은 탐방객들에게 찬사를 받고, 주민들에게는 지역의 자랑거리로 행복 여행 중이다.
한편 부부는 식물이 선사하는 정서적인 안정감을 제주도민들과 나누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 제주도에 있는 학교나 복지시설, 숙박업소 등에도 수국 등 다양한 상품을 공급하고 있으며 제주국제공항에 심을 수국을 납품하기도 했단다. 자신의 정원을 너머 제주도란 정원을 열심히 가꾸어 나가는 중이다.
글·사진 김민수 에디터 강화송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