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2G(Vehicle-to-Grid) 개념. V2G는 심야 시간대 남아도는 잉여 전기를 전기차에 충전하고 수요가 많은 시간대 전기를 공급하는 방식이다. (오토헤럴드 편집)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퇴근 후 전기차를 집에 세워두고 충전기에 연결해 둔 김전력씨. 다음 날 아침, 배터리는 가득 충전이 됐고 전력 사용량이 급증하는 시간대에 전기차에 저장한 전기를 되팔아 짭짤한 수익을 올린다.
| 자동차가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전기를 사고파는 에너지 자산'이 되는 시대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V2G(Vehicle-to-Grid)' 시범 서비스를 처음 시작하면서 단순 이동 수단에 그쳤던 전기차의 역할이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전기를 소비하는 기기에서 전력을 저장하고 필요한 순간 다시 공급하는 분산형 에너지 저장장치로 활용되는 새로운 에너지 생태계의 시작이다.
| 전기차 10만 대로 1GW 규모 발전소 전력 확보
전기차 10만 대가 동시에 전력을 공급하면 1GW 규모 발전소 한 기와 맞먹는 전력을 확보할 수 있고 발전 설비 추가 부담과 환경 오염 물질 배출도 줄일 수 있다.(오토헤럴드 편집)
현대차그룹은 최근 제주도 일반 가정에 V2G 인프라 구축을 완료하고 실제 생활 환경에서 전기차와 전력망 간 양방향 충·방전에 성공했다. 연구시설이나 시험장이 아닌 일반 가정에서 이뤄진 첫 실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번 실증을 통해 확보되는 데이터는 향후 V2G 상용 서비스와 보상 체계, 전력 거래 시스템을 설계하는 기반이 될 전망이다.
V2G의 핵심은 전력 소비 패턴을 바꾸는 데 있다. 전기 수요가 적은 심야에는 저렴한 전기로 차량을 충전하고 냉난방 사용이 집중되는 낮이나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시간에는 차량 배터리에 저장된 전기를 다시 전력망으로 보내는 방식이다.
이용자는 전력 판매에 따른 보상을 받을 수 있고 국가 전력망은 별도의 발전소를 급하게 가동하지 않아도 되는 만큼 국가 전반의 에너지 운영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자동차가 주차돼 있는 시간이 새로운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셈이다.
이 기술이 본격 확산하면 에너지 인프라의 개념 자체도 달라질 수 있다. 한국전력공사 분석에 따르면 10kW급 양방향 충전이 가능한 전기차 10만 대가 동시에 전력을 공급하면 1GW 규모 발전소 한 기와 맞먹는 전력을 확보할 수 있다.
| 충전기 꽂기만 하면 끝... 현대차, 상용화 임박
현대차그룹의 제주도 V2G 실증 시범서비스 참여 고객의 제주시 논세길 소재 자택에 설치된 양방향 충전기. (오토헤럴드 DB)
이는 약 80만 명이 한 시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이다. 정부 전망대로 2030년 국내 전기차가 420만 대 수준까지 늘어난다면 V2G는 수십 기의 발전소를 대체할 수 있는 유연 전력 자원으로 성장할 가능성도 있다.
경제성에도 주목해야 한다. 같은 규모의 전력 인프라를 구축할 경우 V2G는 기존 양수발전 대비 수십조 원의 설비 투자 비용을 줄일 수 있고 구축 기간도 수년이 아닌 약 한 달 수준으로 단축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미 보급된 전기차와 충전 인프라를 활용하기 때문에 새로운 대규모 발전 설비를 건설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라는 평가다.
현대차그룹은 현재 제주도에서 아이오닉 9과 EV9 보유 고객 40명을 대상으로 시범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고객들은 차량을 충전기에 연결하기만 하면 충·방전과 스케줄이 자동으로 관리돼 기존 충전 방식과 큰 차이를 느끼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그룹은 고객들의 충전 습관과 차량 이용 패턴, 배터리 잔량에 대한 심리적 수용성 등을 분석해 상용 서비스 모델과 보상 체계를 구체화할 계획이다.
| 전기차 전력 거래 및 결제 방식 등 해결해야
다만 넘어야 할 과제도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전기차가 전력시장 참여 주체로 명확하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어 전력을 공급했을 때의 거래 방식과 정산 기준, 보상 체계도 마련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제주 실증을 계기로 전국 단위 확산을 위한 법·제도 정비가 병행돼야 V2G가 본격적인 에너지 산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이번 시범 서비스는 단순히 새로운 충전 기술을 시험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자동차가 전력망의 일부가 되고 소비자가 에너지를 직접 거래하는 '프로슈머(Prosumer)'로 변화하는 미래를 현실에서 검증하는 첫 단계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동수단이었던 자동차가 에너지 인프라의 한 축으로 진화하는 변화가 이제 일반 소비자의 일상 속에서 시작되고 있다.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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