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음식을 맛보는 것은 새로운 여행지를 알아가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구이린은 아열대 몬순 기후와 리장(리강)을 품은 덕분에 일조량과 수자원이 풍부하다. 이를 바탕으로 품질 좋은 쌀, 과일, 생선, 채소 등을 얻을 수 있고, 이를 활용한 음식들이 발달해 있다.
대표적으로 구이린 쌀국수와 피지우위(맥주 민물 생선조림), 주통판(대나무통 찹쌀밥) 등이 있다. 게다가 예로부터 수많은 관리와 상인들이 모여들던 교역의 중심지였던 곳이라 광둥, 쓰촨, 후난 등 중국 남북의 다양한 요리 문화가 한데 어우러져 있다.
쌀, 그 포만감
구이린 쌀국수
구이린 사람들의 하루는 쌀국수(미펀, 米粉)로 시작해 쌀국수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 현지인들도 구이린 하면 쌀국수를 떠올릴 정도다. 그렇지만 우리가 흔히 아는 베트남식 쌀국수와는 결이 다르다.
멥쌀로 뽑아내어 매끄럽고 탄력 있는 면발 위에 간장 소스인 '루차이'를 자작하게 비벼 먹는 비빔면과 육수를 부어 먹는 형태가 있다. 사실 어디서든 2가지 형태로 즐길 수 있다. 먼저 비벼 먹고, 나중에 국물을 더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면이 가득 담긴 그릇 위로 튀긴 삼겹살 고명인 자추이피(加脆皮)나 얇은 소고기 편육, 시큼하게 절인 갓과 튀긴 땅콩이 고명으로 올라간다. 푸짐하게 먹고 싶다면 자추이피 추가를 추천한다.
여기에 식당별로 다르긴 한데, 파와 고수, 다진 고추 등 다양한 고명을 준비해놓는다. 취향껏 올려서 비벼 먹으면 된다. 짭조름하면서도 깊은 감칠맛의 소스가 면발에 착 감기며 입안을 가득 채운다.
면을 반쯤 먹은 뒤 매장에 마련된 뜨끈한 사골 육수를 부어 국물 국수로 담백하게 마무리하는 것이 현지인들이 즐겨 먹는 정석 코스다. 가격도 저렴하다. 유명한 가게여도 기본 가격은 5위안(약 1,180원), 고명은 5~10위안 선이다. 또 쌀국수는 호텔 조식으로 나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맥주로 만든 생선조림 상상해 봤나요?
피지우위
이강의 푸른 물줄기를 따라 양삭 지역에 도착한다. 배에서 내리면 사방에서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구이린 근교 양수오를 대표하는 향토 음식 피지우위(啤酒鱼, 맥주 생선조림) 때문이다. 이 요리는 리장(이강)에서 갓 잡아 올린 신선한 잉어나 메기 등 민물고기를 활용한다.
비법은 물을 단 한 방울도 쓰지 않는 데 있다. 뼈째 토막 낸 생선을 기름에 두르고 껍질이 바삭해질 때까지 튀기듯 구운 후, 물 대신 중국 맥주를 콸콸 부어 조려낸다. 여기에 토마토, 고추, 마늘과 특제 소스를 더해 자작하게 졸이면 완성된다.
끓는 과정에서 맥주의 알코올 성분은 완전히 날아가고, 홉의 은은한 향과 맥아의 단맛만 남아 민물고기 특유의 비린내를 완벽하게 잡아준다. 양념이 쏙 배어든 생선의 속살은 부드럽고, 매콤 새콤하면서도 짭조름한 풍미가 혀끝을 사로잡는다.
하얀 쌀밥 위에 생선 살과 자작한 국물을 얹어 쓱쓱 비벼 먹으면 밥 한 공기는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다. 단, 민물고기를 사용해 미세한 흙내가 있을 수도 있다.
푸른 빛의 보약
구이린 요우차
어느 지역을 여행하다 보면 단순한 음식을 넘어 현지인들의 문화적 자부심과 삶의 양식을 마주하게 된다. 구이린에서는 요우차(油茶)가 그러한 존재다. 구이린 사람들은 아침 눈을 뜰 때부터 오후 한가한 시간까지 이 오일티를 끓여 마시며 이웃과 수다를 떠는 것이 일상으로 자리했다.
만드는 방식부터 독특하다. 찻잎을 기름, 생강, 마늘 등과 함께 무쇠 절구에 넣고 짓이겨가며 달달 볶은 뒤, 물을 부어 진하게 끓여냈다. 진한 찻물 위에 튀긴 쌀 과자와 볶은 땅콩, 파 등을 잘게 띄워서 손님에게 대접한다.
모금을 마시면 생강의 알싸한 향과 차 특유의 쌉싸름한 맛이 입안을 훅 치고 들어오지만, 이내 고명으로 얹은 쌀 과자와 땅콩이 씹히면서 구수하고 개운한 뒷맛이 밀려온다. 처음에는 낯설 수 있지만 마실수록 특유의 개운함에 매료된다.
기름진 중국 음식을 먹고 난 뒤 속을 따뜻하고 편안하게 달랠 때도 좋고, 가벼운 아침 식사로도 적합하다. 일반 식당이나 호텔에서 쉽게 만날 수 있어 한 번쯤 즐겨볼 만하다.
동파육은 아닌데요
리푸위토우코우로우
구이린 북부에 위치한 리푸(荔浦) 지역은 중국에서 품질이 좋은 타로(토란의 일종)가 생산되는 곳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예로부터 귀한 재료로 평가받은 리푸 타로를 이용해 만든 명절 요리가 바로 리푸위토우코우로우 (荔浦芋头扣肉, 타로 삼겹살 찜)다.
이 음식을 준비하는 것 자체가 정성이다. 두툼하게 썬 삼겹살을 먼저 한 번 튀겨내어 기름기를 쏙 뺀 다음, 큼직하게 썬 타로와 삼겹살을 교차하여 겹겹이 쌓아 올린다. 그 위에 특제 약재 소스를 듬뿍 발라 찜기에서 푹 쪄낸다.
잘 익은 밤이나 고구마처럼 포슬포슬하고 고소한 타로가 삼겹살에서 배어 나온 진한 육즙을 남김없이 싹 흡수한다. 잘 쪄진 고기와 타로를 함께 집어 입에 넣으면, 씹을 필요도 없이 부드럽게 으깨진다. 삼겹살의 고소함과 타로의 담백함이 잘 어우러진 요리로 밥과 함께 먹기에 무척 좋다.
담양이 떠오르는 맛
주통판
구이린의 아름다운 계단식 논과 산자락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소수민족들의 지혜에서 유래한 별미가 바로 주통판(竹筒饭, 대나무통 찹쌀밥)이다. 숲에서 베어낸 대나무 통을 사용하는 것이 요리의 핵심이다. 잘 씻은 대나무 통 속에 깨끗하게 불린 찹쌀을 채워 넣고, 잘게 썬 돼지고기와 타로, 콩 등의 다양한 재료를 채워 넣는다.
대나무 입구를 나뭇잎 등으로 단단히 막은 뒤, 활활 타오르는 숯불 위에 올려 굴려 가며 은근한 불로 구워낸다. 대나무 겉면이 까맣게 타들어 가면서 안쪽에 갇힌 밥에는 대나무의 은은한 향이 고스란히 배어들게 된다. 다 익은 대나무를 반으로 쪼개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찰지고 쫀득한 찹쌀밥이 모습을 드러낸다.
대나무 향과 여러 식재료의 맛과 향이 진하게 밴 밥은 그냥 먹어도 맛있고, 삼삼한 채소를 반찬 삼아 먹기에도 좋다. 좡족, 요족 등 소수민족 마을이나 관광지에서 쉽게 먹을 수 있다.
구이린+
덥고 습한 날씨에 최적화된 맥주
리취안 1988
구이린의 무더운 날씨를 이겨낼 로컬 맥주가 있다. 리장(漓江)의 맑은 물로 빚어낸 '리취안 1998(漓泉 1998)'이다. 부드러운 라거 계열 맥주이며, 알코올 도수는 약 2.8도(최소)다. 일반 맥주에 비해 도수가 낮아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갈증을 씻어내기 적합한 청량감을 자랑하며, 기름진 음식이나 향신료가 곁들여진 현지 요리와도 훌륭한 페어링을 보여준다. 구이린의 눈부신 자연을 감상하며 마시는 리취안 1998 한 잔은 여행을 기억하는 특별한 매개체가 돼 줄 것이다.
글·사진 이성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