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동아 박귀임 기자] 국내 중고거래 플랫폼의 해외 진출은 국내 상품을 해외 쇼핑몰이나 제휴 플랫폼에 노출시켜 판매하는 '역직구' 모델에서 출발했다. 국내 C2C 중고거래 플랫폼 번개장터가 해외 서비스 '번장 글로벌(Bunjang Global)'을 통해 이 모델을 국내에서 처음 시도한 바 있다. 다만 대형 플랫폼이 해외 진출에 나서더라도 언어·배송·현지 결제 인프라 같은 장벽에 부딪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중고 물품 특성상 개별 상품에 대한 신뢰와 검수가 국경을 넘는 순간 훨씬 까다로워지기 때문이다.
번장 글로벌 역시 역직구 서비스로 출발했지만 최근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내에서만 유통되는 K-팝 굿즈·음반에 대한 해외 팬덤의 수요를 발판 삼아, 단순 상품 판매를 넘어 팬덤이 소비하고 참여하는 공간으로 서비스를 확장하며 차별화를 꾀한다.
번개장터가 국내를 넘어 해외 시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속도를 내고 있는지 짚어본다.
MAU 500만 돌파, 지역별로 전략 차별화
번개장터에 따르면 번장 글로벌의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는 500만 명(2026년 4월 기준)을 돌파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 정도 성장 곡선은 단순한 마케팅 효과라기보다, K-팝이라는 콘텐츠 산업의 흐름과 번개장터의 플랫폼 전략이 맞물린 결과에 가깝다.
이러한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번개장터 측도 K-팝의 전 세계적 흥행을 꼽는다. 번장 글로벌 거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카테고리가 스타굿즈고, 한국에서만 구할 수 있는 희소성 있는 굿즈를 찾는 해외 팬들의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더해 신인 아이돌과의 IP 협업이 성장 곡선에 변곡점을 만들었다. 연예기획사 모드하우스 소속 걸그룹 트리플에스(tripleS)에 이어 지난해 8월 신인 보이그룹 아이덴티티(idntt)와 진행한 첫 연예인 IP 협업이 대표적이다. 한정판 포토카드, 실물 콜렉터블 판매로 진행한 이 협업 시기에 번장 글로벌의 신규 가입자 유입률이 큰 폭으로 늘었다.
팬덤 참여형 마케팅도 한몫했다. 지난 3월 진행한 '스타굿즈 지하철 총공전'은 우승 리워드로 팬이 직접 제작한 광고를 서울지하철 홍대입구역에 거는 방식으로, 업계 최초 시도라는 점에서 이목을 끌었다. 번개장터는 이런 활동이 누적되며 번장 글로벌이 단순 중고거래 플랫폼을 넘어 전 세계 팬덤이 모이는 K-문화 허브로 진화하고 있다고 본다.
번장 글로벌의 2025년 국가별 매출 비중을 보면 북미가 51.7%로 압도적 1위다. 이어 유럽(19.4%), 아시아(19.1%), 오세아니아(3.4%), 남미(3.4%), 아프리카(0.1%) 순이다. 다만 이 수치를 '북미에서 특히 인기가 많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해석하기는 어렵다. 번개장터가 강조하는 것은 유입량과 구매력의 차이다. 지난해 신규 가입자 수만 놓고 보면 1위는 인도네시아였지만, 실제 판매액 기준으로는 미국이 1위였다. 동남아·아시아권에서 팬덤 자체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지만 아직 구매 전환으로는 충분히 이어지지 않은 반면, 북미는 이미 형성된 K-팝 팬덤이 고가의 프리미엄 굿즈를 실제로 구매할 여력과 의향을 갖춘 시장이라는 것으로 풀이된다.
국가별 선호 아티스트가 다르다는 점도 흥미롭다. 미국은 스트레이 키즈, 영국은 BTS, 독일은 에이티즈가 각각 판매량 1위를 차지하는 등 팬덤 지형이 나라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이에 따라 번개장터는 지역별로 다른 전략을 펼치고 있다. 아시아·동남아에서는 신규 팬덤 유입 확대에, 북미에서는 이미 확인된 구매력을 바탕으로 프리미엄·고가 굿즈 라인업 강화에 각각 초점을 맞추는 식이다. 일본은 메루카리 연동을 통한 로컬 채널 전략으로 접근하고 있다.
다변화하는 카테고리에 채널까지 확장
번장 글로벌 거래에서 스타굿즈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 다만 다른 카테고리들이 함께 성장하면서 상대적 비중은 완만하게 분산되는 흐름을 보인다. 2026년 상반기 월별 추이에 따르면 스타굿즈 거래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지만 키덜트, 남성·여성의류, 예술·희귀 수집품 등 다른 카테고리도 함께 올라오면서 그 비중이 1월 47~52%에서 6월 38~46% 수준으로 분산되는 추세다. 특히 키덜트는 꾸준히 10% 안팎을 유지하며 스타굿즈 다음으로 큰 카테고리로 자리 잡았고, 그 외 패션·수집품·스포츠레저 등도 각각 4~9%대를 고르게 차지하고 있다.
번개장터는 이를 두고 스타굿즈가 여전히 번장 글로벌의 핵심 '입구' 역할을 하되, 이용자들이 점차 인접 카테고리로 소비를 넓혀가며 플랫폼 전체의 포트폴리오가 다변화되는 흐름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로 750만 원대 레더자켓, 578만 원 샤넬백 등 초고가 거래도 등장하는 상황이다.
거래 단가가 올라갈수록 관건은 신뢰다. 번장 글로벌은 고가 명품·스트릿웨어 전문 검수 공식 스토어 '브그즈트 럭셔리(BGZT Luxury)'를 별도로 운영한다. 이곳에 올라오는 상품은 모두 번개장터의 융합 과학 검수 솔루션 '코어리틱스(Corelytics)'를 통해 전문가 검수를 마친 뒤 등록된다. 생테랑 사크 드 주르나 보테가 베네타 카세트백 같은 초고가 명품이 실제로 이 채널을 통해 거래되고 있다. 번개장터 관계자는 "초고가 거래일수록 개인 간 직거래보다는 이런 검수 완료 공식 채널을 통한 거래 비중이 높은 편"이라고 전했다.
일본 시장에서는 2024년 6월 시작한 메루카리와의 듀얼 리스팅 협업이 뚜렷한 성과를 내고 있다. 2026년 상반기 한·일 교차 거래액은 전년 동기 대비 약 두 배 수준으로 늘었고, 가장 최근인 6월에도 거래액 기준 전년 동월 대비 약 100% 이상 증가하며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협업 2년 차에 접어든 시점에도 전년 대비 두 배 가까운 성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시적 이벤트성 협업이 아니라 양국 이용자 사이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거래 채널로 평가할 수 있다.
다만 메루카리 같은 듀얼 리스팅 방식의 파트너십은 현재로선 유일한 사례다. 번개장터는 다른 국가로의 확대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면서도, 판매 채널을 넓히는 아웃바운드 파트너십을 폭넓게 확대하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미국 오픈마켓 플랫폼 이베이(eBay), 중국 최대 C2C 플랫폼 씨엔위, 러시아 대표 이커머스 줌(JOOM), 일본 구매대행 플랫폼 도어조(Doorzo), 글로벌 역직구 플랫폼 딜리버드코리아 등 해외 채널에 번개장터 상품을 노출하는 방식이다. 2026년 상반기 기준 미국·중국·대만·말레이시아·일본·러시아 등 주요국 이커머스 기업들과 수십 건의 파트너십을 체결한 상태이며, 하반기에는 기존 파트너사와의 API 연동을 고도화해 연동 상품 수와 실시간 동기화 수준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중고거래 데이터'를 음악 차트 지표로···끝없는 새로운 시도
번개장터의 글로벌 전략에서 가장 이례적인 대목은 지난 7월 1일 한터글로벌과 손잡고 신설한 '트렌드 차트'다. 그동안 중고거래 시장은 팬덤 소비가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는 곳임에도 공식 지표에는 잡히지 않는 영역으로 여겨졌다. 초동 판매량이나 스트리밍 지표는 공식 차트에 반영되지만, 이후 팬들 사이에서 오가는 음반·굿즈 재거래는 수요를 보여주면서도 지표 밖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이다.
이번 제휴는 이 지점을 공식 지표 안으로 끌어들였다. 번개장터의 K-팝 음반·굿즈 실거래 기록이 한터차트 자체의 어뷰징 필터링 시스템을 거친 뒤 소셜 언급률·유입률 등 기존 지표와 함께 종합 집계돼 트렌드 차트에 반영되는 구조다. 특정 사업자 데이터로의 편중을 막기 위해 번개장터 데이터에는 상한이 설정되고, 한터차트가 보유한 기존 빅데이터 체계와 복합적으로 융합하는 구조로 설계됐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는 지점이 7월 말 예정된 '후즈팬 스토어' 입점이다. 한터차트 공식 스토어가 번개장터 프로상점에 입점하면, 여기서 발생하는 정품 음반 판매 실적이 한터차트 음반 판매량 집계에 실시간 반영된다. 이 음반 판매량은 국내 주요 음악방송 1위 순위를 결정하는 핵심 기준이다. 트렌드 차트가 재거래 데이터를 새로운 지표로 편입시켰다면, 후즈팬 스토어 입점은 번개장터라는 플랫폼 자체를 정품 음반의 공식 유통 채널로 끌어들여 음악방송 순위 산정에까지 발을 걸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번개장터가 기대하는 효과는 명확하다. K-팝 팬덤은 응원하는 아티스트의 차트 순위를 위해 적극적으로 구매·거래하는 성향이 강한 만큼, '번개장터에서 거래하면 한터차트에 반영된다'는 사실이 팬덤 사이에 알려지면 국내외 신규 유입과 거래 전환율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계산이다. C2C 중고거래 데이터가 공신력 있는 차트에 공식 반영되는 것은 기존 차트 업계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운 시도이기도 하다. 즉 번개장터로서는 거래 데이터 자체를 검증된 팬덤 소비 지표로 인정받는 계기가 된다. 장기적으로는 국내 팬덤 거래로 다진 입지를 발판 삼아 해외 아웃바운드 파트너십을 확대해 해외 팬덤 유입과 거래액 확대까지 이어가겠다는 것이 이번 협력의 궁극적 목표라고 번개장터 측은 설명한다.
다만 이런 시도를 두고 우려의 시선도 없지 않다. 중고거래라는 특성상 동일 상품이 여러 번 되팔리며 반복 거래로 잡힐 수 있고, 팬덤이 차트 순위를 의식해 실구매 의사 없이 사고파는 행위를 반복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대해 번개장터 측은 자체 어뷰징 필터링 시스템과 데이터 상한 설정을 적용하고 있다. 한터차트 역시 자체 빅데이터 분석 체계를 통해 별도의 필터링을 거치는 이중 구조라고 설명한다. 다만 중고거래 데이터가 방송 순위까지 영향을 미치는 구조인 만큼 필터링의 실효성은 앞으로 지표가 누적되면서 검증받아야 할 부분으로 남는다.
컬처 커머스 허브 목표로
번개장터가 이렇게 속도를 낼 수 있는 배경에는 15년에 이르는 업력이 있다. 2011년 서비스를 시작한 번개장터는 국내 개인 간 중고거래 시장에서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플랫폼이다. 초기에는 일반 중고 물품 거래가 중심이었지만 이후 명품·스니커즈·스타굿즈 등 상대적으로 단가가 높고 진위 여부가 중요한 카테고리로 무게중심을 옮겨왔다. 국내 시장 성장세가 점차 완만해지는 상황에서 번장 글로벌을 앞세운 해외 확장은 다음 성장 축을 찾기 위한 시도로 읽힌다.
앞으로의 번개장터 방향은 두 갈래로 요약된다. 첫째는 포토카드·애장품처럼 팬덤 문화에서 상징성이 큰 아이템을 중심으로 아티스트 협업을 지속 확대하는 것, 둘째는 K-팝을 넘어 웹툰·게임·캐릭터 IP 등 글로벌 팬덤이 형성된 다른 영역으로 협업 대상을 넓혀가는 것이다. 번개장터 관계자는 "스타굿즈 지하철 총공전처럼 팬이 직접 참여해 리워드를 만들어가는 캠페인도 지속적으로 병행하며, 거래를 넘어 팬덤의 참여와 결속력을 높이는 공간으로 기능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글로벌 채널이 늘어나는 만큼 위조품·사기 리스크에 대한 우려도 자연히 커진다. 번개장터에 따르면 앞서 브그즈트 럭셔리에 적용된 것과 같은 자체 검수 인프라인 코어리틱스를 해외 파트너사와의 검수·대응 지원에도 활용하고 있다.
다만 구조적인 한계도 있다. 브그즈트 럭셔리 등 자체 검수를 거친 상품은 번개장터가 정품 인증을 보장하지만, 일반 개인 판매자의 크로스보더 거래는 국내외 C2C 플랫폼 공통의 거래 구조를 따른다. 이 경우 현지 구매·배송은 계약된 운영 파트너가 수행하고, 거래 체결 이후의 CS·클레임 대응은 해당 글로벌 플랫폼의 정책을 따르게 된다. 위조품 이슈가 발생하면 플랫폼 본사 차원의 셀러·계정 제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일반 판매자 거래에 대한 검수 품질 관리는 번개장터와 파트너 플랫폼이 함께 책임져야 하는 영역으로 남아 있다.
결국 번개장터가 그리는 그림은 중고거래 플랫폼을 넘어선 '컬처 커머스 허브'다. 스타굿즈 거래로 팬덤을 끌어들이고, IP 협업으로 결속력을 다지는 데 이어 이제는 거래 데이터 자체를 공식 지표로 편입시키는 등 K-팝 산업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시도다. 다음 단계로 예고된 웹툰·게임·캐릭터 IP로의 확장이 실제로 이뤄질지, 그리고 중고거래 데이터가 음악 차트라는 공신력 있는 영역에서 얼마나 오래 신뢰를 유지할 수 있을지가 번개장터의 다음 성장 축을 가늠할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IT동아 박귀임 기자(luckyim@it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