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은숙 현대차·기아 ICT담당 사장. 현대차그룹이 12일 양재동사옥에서 디지털 전환(DX)부터 생성형 AI를 활용한 AI 전환(AX)까지 전사적인 변화 과정을 처음 공개했다. (김흥식 기자)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현대자동차그룹이 2019년부터 추진해 온 디지털 전환(DX)부터 생성형 AI를 활용한 AI 전환(AX)까지 전사적인 변화 과정을 처음 공개했다. 단순히 생성형 AI 사용을 확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연구개발(R&D), 제조, 정비, 고객 서비스 등 실제 업무에 AI를 적용해 생산성과 효율을 높이고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다만 회사가 제시한 성과 대부분은 자체 산정한 시간·비용 절감 효과에 기반하고 있어 실제 투자비용을 감안한 순효과와 AI 도입에 따른 인력 및 업무 재편, 데이터 보안 문제 등은 과제로 남았다.
현대차그룹은 12일 서울 양재동 본사에서 ‘현대차그룹 AX 성과 발표회’를 열고 2019년부터 단계적으로 추진한 DX·AX 현황과 향후 계획을 공개했다. 진은숙 현대차·기아 ICT담당 사장은 “AI는 분명 중요한 기술이지만 결국 기업이 활용해야 하는 도구”라며 기술 자체보다 이를 얼마나 빠르게 업무와 사업에 적용해 경쟁력으로 내재화하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의선 회장 "IT 기업보다 더 IT 기업 같은 회사"
현대차그룹은 2018년 정의선 회장이 "IT 기업보다 더 IT 기업 같은 회사가 되겠다"라고 선언한 이후 전사적 AI를 추진해 왔다. (김흥식 기자)
현대차그룹은 생성형 AI가 본격적으로 확산하기 전인 2019년부터 DX를 추진했다. 정의선 회장이 2018년 “IT 기업보다 더 IT 기업 같은 회사가 되겠다”고 밝힌 이후 협업 방식과 데이터 체계를 바꾸는 작업을 진행했다.
2022년부터 지라(JIRA), 두레이(Dooray), 컨플루언스(Confluence)를 도입해 업무와 지식 데이터를 축적했고 마이크로소프트의 M365를 통해 글로벌 사업장과 조직의 업무 환경도 표준화했다. 이를 통해 업무 진행 상황과 의사결정, 프로젝트 결과물 등을 조직의 디지털 자산으로 축적하고 조직 간 정보 공유와 협업의 투명성을 높였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연구개발, 생산, 품질, 판매 등 각 영역에 흩어진 데이터는 ‘글로벌 원 데이터 파이프라인’을 통해 표준화·연결했다. 개발 데이터가 생산과 품질관리에 활용되고 판매 데이터가 다시 제품 개발과 공정 개선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특히 기존에 분산돼 있던 정보와 지식을 하나의 협업 환경에서 공유·축적하면서 AI가 활용할 수 있는 디지털 자산을 확보하는 기반도 마련했다.
현대차그룹의 AX는 생성형 AI를 직원들에게 배포하는 데 그치지 않고 AI가 활용할 수 있는 업무와 데이터 환경을 먼저 구축한 뒤 AI를 접목하는 방식으로 볼 수 있다. AI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양질의 데이터와 이를 공유·활용할 수 있는 업무 환경이 선행돼야 한다는 판단이 깔려 있는 셈이다.
생성형 AI 시대에 앞서 진행한 DX가 단순한 업무 시스템 교체가 아니라 현재의 AX를 가능하게 한 기반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사내 생성형 AI 플랫폼 ‘H Chat Pro’를 사용해 업무를 보고 있는 현대차그룹 직원. (현대차그룹)
H Chat Pro 3만명…AI 활용 전사 확산
전사 AX 확산의 중심에는 사내 생성형 AI 플랫폼 ‘H Chat Pro’가 있다. 쳇GPT, 제미나이, 클로드 등 외부 생성형 AI 모델을 보안 환경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구축한 플랫폼으로 현대차그룹은 이를 통해 생성형 AI를 특정 부서의 전문 도구가 아닌 일반 직원도 활용할 수 있는 업무 도구로 확장하고 있다.
2025년부터 일반 임직원으로 사용 범위를 확대했으며 문서 작성, 정보 검색, 데이터 분석, 코드 개발뿐 아니라 일반 직원이 직접 AI 에이전트를 만들어 업무에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회사는 경영층을 포함한 임직원 교육과 사내 커뮤니티를 병행해 개인의 AI 활용 경험을 조직 전체로 확산시키는 데도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 7월 기준 H Chat Pro 사용자는 3만 명을 넘어 현대차·기아 일반·연구직 임직원의 약 80%에 달한다. 단순히 AI 서비스를 제공하는 단계를 넘어 직원이 직접 업무에 필요한 AI 도구를 만들고 활용하는 단계로 전환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사용률 80%가 실제 업무 혁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 행사에서 현대차그룹이 공개한 자료에는 AI 사용 빈도나 1인당 업무시간 절감, AI가 만들어낸 결과물의 정확도와 오류율 등 실질적인 활용 성과를 보여주는 지표는 포함되지 않았다.
AI 활용 인력이 늘어난 만큼 앞으로는 사용자 수보다 AI가 실제 업무 프로세스를 얼마나 바꾸고 생산성과 품질 향상으로 연결됐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AX 성과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전망이다.
R&D부터 고객 서비스까지 AI 성과
차량 식별번호(VIN)를 자동 인식해 시스템 정보와 대조하는 ‘AI 자동화 인식 서비스. (현대차그룹)
현대차그룹은 R&D, 제조, 정비, 고객 채널 등에서 AI를 활용한 구체적인 성과도 공개했다. R&D 분야의 ‘충돌안전 AI 어시스턴트’는 과거 충돌시험 결과와 시험 이미지, 해석 자료를 통합 검색하고 유사 사례를 분석한다. 회사는 관련 사례 탐색과 자료 검토 시간이 약 90% 단축됐다고 밝혔다.
제조에서는 차량 식별번호(VIN)를 자동 인식해 시스템 정보와 대조하는 ‘AI 자동화 인식 서비스’를 글로벌 생산거점 약 70곳에 적용했다. 이를 통해 연간 52억 4000만 원의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차 이동 경로를 최적화하는 AI 기술은 불필요한 생산 중단 시간을 약 86% 줄였다. 기존 탐색 알고리즘에 강화학습 기반 AI를 결합해 여러 이동 경로 가운데 최적의 경로를 자동으로 찾는 방식이다.
정비 분야에서는 LLM 기반 ‘정비 지원 AI 서비스’를 통해 오류 코드와 증상에 맞는 매뉴얼과 과거 정비 기록을 분석한다. 회사는 정비 대응 시간이 약 42% 단축됐다고 밝혔다.
고객 리뷰 대응도 AI가 리뷰를 분석하고 태그와 답변 초안을 만드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리뷰 1건당 처리시간은 평균 35분에서 5분으로 줄었으며 전체 리뷰의 85% 이상을 AI 기반으로 처리하고 있다. 오는 9월부터는 전체 리뷰 대응 프로세스를 자동화할 계획이다.
인력 재배치·보안·투자효과는 과제
현대차그룹은 전사적 AI로 업무 속도 개선과 함께 막대한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두고 있다. (현대차그룹)
AI 도입으로 반복 업무가 줄어들면서 직원들이 분석과 설계 개선, 고객 경험 분석 등 고부가가치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 현대차그룹의 설명이다.
그러나 업무시간이 줄어든 이후 인력을 어떻게 재배치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공개되지 않았다. AI에 따른 생산성 향상이 신규 인력 축소로 이어질지, 기존 인력을 AI 활용 직무로 전환할지도 향후 AX를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전망이다.
데이터 보안 역시 풀어야 할 과제다. 현대차그룹은 H Chat Pro를 보안이 확보된 환경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직원이 입력한 데이터의 저장 위치와 외부 AI 모델 학습 활용 여부, 민감정보 및 국가핵심기술 관련 데이터의 차단 방식 등은 공개하지 않았다.
성과 수치 역시 투자비용을 함께 따져볼 필요가 있다. 연간 52억 4000만 원의 비용 절감과 생산 중단시간 86% 감소 등은 상당한 성과지만 AI 모델 사용료, 데이터 구축, 시스템 개발, 보안 인프라, 유지보수, 교육 등에 투입된 비용은 이번 자료에 제시되지 않았다.
따라서 향후 AX 성과는 단순한 시간 단축이나 비용 절감률보다 투입 비용 대비 효과와 오류율, 품질, 고객 만족도까지 포함해 평가해야 한다.
피지컬 AI로 확장…AI와 현실 세계 결합
현대차그룹은 생성형 AI를 일반적 업무뿐만 아니라 생산 현장과 로봇, 차량 자체에 결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한편 현대차그룹은 전사 AX를 넘어 차량과 로보틱스, 제조·서비스 현장 등 물리적 세계와 AI가 결합하는 ‘피지컬 AI(Physical AI)’로 영역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생성형 AI를 사무직 업무에 적용하는 현재 단계에서 한발 더 나아가 생산현장과 로봇, 차량 자체에 AI를 결합하겠다는 의미다.
제조 특화 AI 에이전트 플랫폼 ‘E-FOREST: POLARIS’를 통해 현업 엔지니어가 직접 AI 에이전트를 만들고 검증·운영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단순한 시범사업을 넘어 제조 현장에서 활용되는 AI 에이전트를 통해 개인의 경험과 노하우를 디지털 자산으로 축적한다는 전략이다.
현대차그룹은 “AI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업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AI를 가장 제대로 활용하는 기업”을 목표로 제시했다.
이날 있었던 양재사옥 행사에서 중요한 것은 AI 사용자의 숫자가 아니었다. AI가 실제 자동차를 얼마나 더 빠르고 안전하게 만들고 투자한 비용 이상의 성과를 내는 과정에서 사람과 조직의 일을 어떻게 바꾸느냐가 현대차그룹 AX의 진짜 성적표가 될 전망이다.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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