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M 소더비 경매에 출품된 차대번호 '0' 페라리 루체. 사전 예상가는 110만 달러를 크게 뛰어 넘는 4000만 달러에 낙찰됐다. (소더비)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역대급으로 못 생긴 페라리'라며 악평을 받았던 브랜드 최초의 순수 전기차 '루체(Luce)'가 전 세계 자동차 경매 역사에서는 전혀 다른 역사를 썼다. 닛산 리프(Leaf)와 비교하는 굴욕까지 겪었지만 역대 페라리 경매에서 최상위권에 오르면서 이름값을 했기 때문이다.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몬터레이에서 열린 RM 소더비 경매에 등장한 페라리 루체는 무려 4000만 달러, 우리 돈 약 567억 4000만 원에 낙찰됐다. 전기 페라리라는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는 모델이지만 진짜 놀라운 것은 이 가격이 페라리 역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다.
현재 공개 경매 기준 페라리 최고가는 2023년 뉴욕 RM 소더비에서 거래된 1962년 페라리 330 LM/250 GTO의 5170만 5000달러(약 733억 원)다. 이어 2018년 몬터레이에서 낙찰된 1962년 페라리 250 GTO가 4840만 5000달러(약 686억 원), 올해 1월 또 다른 250 GTO의 3850만 달러(약 546억 원) 순으로 기록돼 있었다.
따라서 이번 루체의 4000만 달러는 공개 경매 기준 페라리 역대 세 번째로 비싼 가격에 해당한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전기 페라리'가 60년 넘게 수집가 시장을 지배해 온 250 GTO를 제치고 최상위권에 올라선 셈이다.
이번 경매에 출품된 루체는 특별한 가치를 갖고 있다. 루체 프로그램의 첫 생산 차량인 '차대번호 0(Chassis 0)'이다. 페라리의 맞춤 제작 부서인 테일러 메이드가 별도로 손을 봤고 차대번호 0을 위해 개발한 마더펄라 세미 글로스 외장 색상과 흰색 5스포크 휠, 흰색 브레이크 캘리퍼, 특별한 페라리 로고 등을 적용했다. 실내 역시 펄라 르망 메탈릭 가죽으로 꾸몄다.
페라리 루체의 실내. (페라리)
그럼에도 숫자만 놓고 보면 더 재미있다. 유럽에서 판매되는 일반 루체의 가격은 55만 유로(약 9억 원), 기사에서 당시 환율로 약 64만 달러 수준으로 소개됐다. 이를 이번 경매 낙찰가와 단순 비교하면 약 62.5배다. 경매가 한대 값으로 일반 루체 62대 넘게 살 수 있는 셈이다.
루체는 공개 이후 디자인을 놓고 상당한 논란에 휩싸였던 모델이다. 루카 디 몬테제몰로 전 페라리 회장은 "루체는 적어도 중국인들이 카피(복제)하지는 않을 차"라며 "그 차에서 페라리의 상징인 '도약하는 말(Prancing Horse)' 엠블럼만큼은 떼어내기를 바란다"라고 했을 정도다.
대중의 평가도 다르지 않았다. 전통적인 페라리의 낮고 날렵한 스포츠카 이미지와 다르다는 지적이 나왔고 보급형 전기차인 닛산 리프와 비교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아이폰 등을 만든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와 마크 뉴슨이 참여한 러브프롬이 협업했지만 대부분 악평에 가까운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페라리 역사상 최악의 모델로 혹평을 받은 루체를 누군가 사전에 예상됐던 110만 달러를 크게 뛰어 넘는 4000만 달러에 사들였다. 수집가들은 '페라리 최초의 전기차'라는 역사적 가치와 함께 차대번호 0에 부여된 특별한 의미가 더해져 미래 가치는 더 상승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편 자동차 경매 최고가는 1955년형 메르세데스 벤츠 300 SLR 울렌하우트 쿠페가 2022년 5월 5일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비공개 경매를 통해 1억 4276만9,250달러(약 2025억 원)에 낙찰된 기록이다. 기네스 세계기록도 이를 역대 가장 비싼 자동차 경매 기록으로 인정하고 있다.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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