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연(Zn)을 이용한 수계 아연이온전지(AZIB, Aqueous Zinc-Ion Battery)가 최대 난제인 ‘셔틀 효과’를 억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오토헤럴드 편집)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리튬이온 배터리가 주도해온 이차전지 시장에 아연(Zn)을 이용한 수계 아연이온전지(AZIB, Aqueous Zinc-Ion Battery)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아연은 비교적 풍부하게 존재하는 금속으로 원재료 확보와 공급망 안정성 측면에서 리튬보다 유리한 소재다.
호주 플린더스대학교 연구진은 최근 6만 회 이상의 충·방전 수명을 확보한 수계 아연-요오드 충전식 배터리를 개발했다. 전분에서 유래한 저비용·생분해성 소재를 활용해 기존 아연-요오드 전지의 최대 난제인 ‘셔틀 효과’를 억제하면서 실용화 가능성을 높였다는 평가다.
AZIB의 가장 큰 특징은 수계 전해질이다. 리튬이온 배터리가 일반적으로 유기계 전해질을 사용하는 것과 달리 물 기반 전해질을 사용해 화재와 열폭주 위험을 낮출 수 있다. 여기에 음극으로 사용하는 아연은 비교적 풍부하고 저렴해 원재료 공급망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특히 대규모 ESS는 자동차용 배터리와 달리 높은 에너지 밀도뿐 아니라 화재 안전성, 긴 수명, 원재료 가격과 공급 안정성이 경제성을 좌우한다. AZIB가 전기차보다 ESS 시장에서 먼저 경쟁력을 확보할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다.
상용화 걸림돌 ‘셔틀 효과’ 해결...6만회 충전
아연-요오드 배터리의 대표적인 기술적 난제는 충·방전 과정에서 생성되는 폴리요오드화물의 셔틀 효과다. 폴리요오드화물이 전해질을 통해 분리막을 통과해 아연 음극으로 이동하면 활성 물질 손실과 아연 부식이 발생하고, 자기방전과 성능 저하로 이어진다.
플린더스대 연구진은 전분에서 유래한 사이클로덱스트린 기반 고분자를 활용했다. 사이클로덱스트린의 내부에 소수성 공간을 만들어 요오드 계열 물질을 붙잡아두는 일종의 ‘분자 우리’ 역할을 하도록 한 것이다. 폴리할라이드를 포획하고 필요한 시점에 방출하도록 설계해 셔틀 현상을 억제했다.
AZIB는 에너지밀도가 낮은 반면 충전 수명이 길고 핵심 소재 공급이 상대적으로 쉬워 대용량 에너지저장장치인 ESS 상용화에 적합하다. (엘지에너지솔루션)
이번 연구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충전 속도와 수명의 조합이다. 연구진은 150mAh/g 조건에서 3분 충전으로 6만 회 이상의 충·방전을 구현했다. 사이클당 성능 저하율은 0.0001~0.0003% 수준이다.
용량을 200mAh/g으로 높이면 충전 시간은 7분으로 늘어나지만 8000회 이상의 충·방전 수명을 확보했다. 작동 전압은 1.3~1.4V다.
6만 회라는 수명은 특히 ESS에서 의미가 크다. ESS는 한 번 충전했을 때의 주행거리보다 얼마나 많은 충·방전을 반복하면서 성능을 유지하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에너지 밀도 낮아 자동차는 아직... ESS 적합
다만 AZIB가 당장 리튬이온 배터리를 대체하기에는 해결해야 할 과제도 남아 있다. 물 기반 전해질은 안전성에서 강점이 있지만 전압을 높이는 데 제약이 있고, 아연 음극에서는 덴드라이트 성장과 수소 발생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에너지 밀도 역시 과제다. 부피와 중량 제약이 큰 전기차보다 상대적으로 에너지 밀도 부담이 적은 ESS가 AZIB의 현실적인 시장으로 꼽히는 이유다. 이와 함께 아연 덴드라이트 억제, 전해질 안정화, 요오드 셔틀 억제, 전극 고용량화, 대형 셀 제조와 장기 신뢰성 확보가 필요하다.
AZIB는 아연의 풍부한 자원과 수계 전해질의 안전성에 초장수명까지 확보할 경우 태양광·풍력 등 변동성이 큰 재생에너지의 전력 저장장치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플린더스대 연구진도 현재 산업계와 협력해 아연-요오드 배터리의 프로토타입 플랫폼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아직 상용 제품 단계는 아니지만 연구실 성능을 실제 시스템으로 옮기기 위한 다음 단계에 진입했다는 의미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시대가 끝난다는 의미도 아니다. 오히려 배터리 시장이 용도에 따라 서로 다른 화학계를 선택하는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다.
‘리튬이온 다음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하나의 답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 다만 물과 아연, 식물에서 얻은 소재로 6만 회 이상 충·방전할 수 있는 배터리의 등장은 차세대 ESS 시장의 경쟁 구도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다.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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