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 일민미술관 앞에서 국내에 처음 공개됐던 '폭스바겐 XL1'. 아쉽게도 이날 행사에서는 배터리 충전 문제로 실제 주행에는 나서지는 못했다. (오토헤럴드 DB)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1L의 연료로 100km를 달렸던 자동차가 있었다. 4L면 서울에서 부산을 달리고도 남는 연비다. 그 때 1200원대 였던 휘발유의 L당 가격이 요즘 약 1800원으로 올랐지만 불과 7200원으로 충분했다.
전비가 5km/kWh인 전기차 급속 충전 요금을 kWh당 350원 안팎으로 계산했을 때 서울-부산 편도에 약 2만 5000원이 드는 점을 감안하면 전기차의 3분의 1도 안 되는 비용으로 서울에서 부산을 주파할 수 있었다.
‘1L 카(1-Litre Car)’의 신화로 불렸던 폭스바겐 'XL1'이다. 폭스바겐 XL1은 고(故) 페르디난트 피에히 폭스바겐그룹 회장이 볼프스부르크 본사에서 함부르크까지 직접 프로토타입을 몰고 주행을 마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후 2013년 250대 한정 양산으로 이어지며 자동차 역사에 큰 이정표를 세웠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후속 모델의 개발이나 대량 양산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명맥이 끊겼다. 현재 남아 있는 XL1은 대부분 박물관 전시대나 개인 수집가의 차고 속에 박제돼 있다.
꿈의 자동차로 불리며 양산 문턱까지 넘었던 폭스바겐의 1L 카가 시장에서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던 XL1의 경이로운 효율 뒤에는 '기계공학적 집념'과 함께 '일상적인 승용차로서의 한계'가 공존했다.
공학적 이상향, 경량화와 극한의 에어로다이내믹
XL1 효율성의 비밀은 경량화와 극강의 에어로 다이내믹, 그리고 디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파워트레인에 있다. 특히 XL1의 파워트레인은 830cc 2기통 TDI 디젤 엔진(48마력), 그리고 27마력(20kW)급 전기모터와 5.5kWh 리튬이온 배터리로 최대 50km를 달렸다. 유럽 기준 공인 연비는 111km/L에 달했다.
차체는 탄소섬유 강화 플라스틱(CFRP)과 마그네슘 등 고가의 우주항공급 소재로 감싸 공차중량이 불과 795kg에 그쳤다. 국내 대표 경차인 기아 모닝 밴(약 900kg대)보다도 100kg 이상 가벼운 수치다.
현대차 아이오닉 6 N. (오토헤럴드 DB)
에어로다이내믹에 최적화된 독특한 외관도 에너지 효율을 끌어올리는 핵심 역할을 했다. 공기 흐름을 극대화한 물방울(테이퍼드)형 실루엣과 후륜을 완전히 감싼 리어 휠 커버, 사이드미러를 대체한 e-미러(카메라) 등을 통해 양산차 역대 최저 수준인 0.189Cd의 공기저항계수를 달성했다.
같은 컨셉의 현대차 아이오닉 6(0.206Cd)와도 격차가 크다. 자동차 공학계에 따르면 고속도로 주행 시 Cd값을 0.01 줄일 때마다 최대 2.5% 안팎의 연비 개선 효과가 나타난다. 디자인 차이 하나만으로 아이오닉 6보다 4% 이상 높은 에너지 효율을 뽑아낼 수 있었다.
대량 생산 실패, 일상성과 시장성의 결여
하지만 공학적 승리가 곧 상업적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XL1이 대량 생산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단 250대로 막을 내린 이유는 일상적인 자동차가 갖춰야 할 실용성과 시장성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좁아진 실내 탓에 두 탑승자는 어깨를 나란히 하지 못하고 조수석을 운전석 뒤편으로 비껴 배치해야 했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파워스티어링을 덜어내 스티어링 휠 조작도 쉽지 않았다. 엔진 부하를 줄이느라 에어컨도 제 기능을 하지 못했고 트렁크 공간은 작은 배낭 하나 넣기가 빠듯할 정도로 좁았다.
가격은 더 큰 걸림돌이었다. 항공기에 쓰는 첨단 복합소재와 수제작 공정이 대거 투입되면서 출고 가격이 대당 1억 원을 훌쩍 넘었다. 1억 중반대가 넘는 돈을 주고 에어컨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2인승 초소형차를 살 소비자는 없었다.
그래도 멈추지 않는 효율성의 계보 경쟁
자동차가 대중화하기 시작한 20세기 초반, 기화기(카뷰레터) 방식의 초기 내연기관차는 연료를 가득 채우고도 100km 안팎을 주행하는 데 그쳤다. 공인 연비가 L당 10km를 넘기기 시작한 것도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소형화된 고효율 엔진과 전자제어 연료분사(EFI) 시스템이 보급되면서부터다.
현대차는 현대차와 제네시스 라인업에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를 대거 투입할 예정이다. (오토헤럴드 db0
혼다 CVCC 엔진과 폭스바겐 골프 등이 잇따라 등장하며 L당 10km의 벽을 깨는 모델들이 이 때부터 쏟아져 나왔다. 같은 에너지로 더 멀리 달리고자 하는 완성차간 경쟁이 본격화 한 것도 이 때부터다.
21세기에 들어서며 고효율의 바통은 전동화 파워트레인으로 넘어왔다. 토요타 프리우스로 대표되는 일반 하이브리드(HEV)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가 속속 등장하며 복합 연비 20km/L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이제는 전기차와 내연기관의 장점을 결합한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가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현대차가 내년 북미 시장을 겨냥해 선보일 싼타페 EREV가 대표적이다. 배터리 완충과 1회 주유를 결합해 총 600마일(약 1000km) 이상의 항속거리를 확보하는 구조다.
전기차 역시 초기 100~200km에 불과했던 항속거리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삼원계(NCM) 중심에서 전고체(Solid-state), 실리콘 음극재, 리튬 메탈 등 혁신 소재를 접목하며 에너지 밀도를 끌어올리는 시도를 거듭하고 있다.
폭스바겐 XL1의 명맥은 이어지지 않았지만 자동차 시장이 추구하는 효율의 혁신으로 가족을 태우고 충전 스트레스 없이 1000km를 달릴 수 있는 '현실적인 모빌리티'의 대중화 시대가 오고 있다.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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