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돌 시험 차량 안에서 하이브리드 더미를 정밀 세팅 중인 GM 안전 연구 엔지니어. (GM)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자동차 대중화의 기점을 대량 생산 체제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진정한 대중화를 이끈 열쇠는 ‘셀프스타터(전동식 시동장치)’였다. 이전까지는 시동을 걸기 위해 차량 앞쪽의 쇠 크랭크 손잡이를 온 힘으로 돌려야 했다. 번거로울 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근력이 필요했고 역회전으로 인한 부상자가 속출하기까지 했다.
이 같은 불편은 GM이 세계 최초로 선보인 셀프스타터로 일순간에 사라졌다. 키를 돌리기만 하면 손쉽게 시동이 걸리면서 완력이 약한 여성과 노약자도 차를 몰 수 있게 됐다. 남성 또는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었던 자동차가 모두의 일상으로 들어서는 결정적 순간이었다.
오늘날 자동차 탑승자가 당연하게 누리는 수많은 안전 및 편의 사양 뒤에는 1세기가 넘는 완성차 업계의 치열한 시행착오와 혁신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곳이 제너럴 모터스(GM)다. 요즘의 자동차에 표준으로 정착된 주요 안전 기술 다수가 GM의 엔지니어링을 통해 처음 태동했다.
1912년 전동식 셀프스타터: 위험천만한 쇠손잡이를 버튼 하나로
위험천만한 쇠 크랭크 손잡이를 없애고 세계 최초의 전동식 셀프스타터를 탑재한 1912년형 캐딜락 모델. (GM)
초기 내연기관 자동차는 무겁고 긴 쇠 크랭크 손잡이를 엔진 앞쪽에 꽂아 직접 손으로 힘껏 돌려 시동을 걸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역회전하는 손잡이에 맞아 치명상을 입거나 사망하는 사고가 잦았다. 1912년 캐딜락 창업자 헨리 릴랜드는 발명가 찰스 케터링과 함께 배터리로 구동되는 ‘전동식 셀프스타터(Electric Self-Starter)’를 개발해 1912년형 캐딜락에 탑재했다. 레버나 버튼 조작만으로 안전하게 시동이 걸리는 시대를 열며 캐딜락에 영국 뒤와 트로피(Dewar Trophy)를 안겨준 결정적 기술이다.
1933년 충돌 시험(Crash Testing): 과학적 안전 검증의 첫발
1930년대 밀퍼드 프루빙 그라운드에서 진행된 초기 차량 전복 및 한계 경사도 측정 시험. (GM)
GM은 1924년 미국 미시간주 밀퍼드에 세계 최초의 자동차 주행 시험장인 ‘밀퍼드 프루빙 그라운드’를 세웠다. 이어 1930년대 초반부터 차량을 비탈길 아래로 굴리는 전복 시험과 벽을 향해 차량을 돌진시키는 장벽 충돌 시험을 개척했다. 초기의 원시적인 육안 관찰에서 출발해 점차 원격 조종 장치와 초고속 카메라, 정밀 센서를 도입하며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체계적인 차량 충돌 안전 설계를 확립했다.
1967년 충격 흡수식 스티어링 칼럼: 운전자 가슴 향한 ‘쇠꼬챙이’ 제거
충돌 시 격자형 강철 메시가 찌그러지며 운전자 반대편으로 최대 8.25인치 축소되는 GM의 에너지 흡수식 스티어링 칼럼 구조. (GM)
충돌 사고 시 스티어링 휠과 앞바퀴를 잇는 조향축(스티어링 칼럼)은 운전자의 흉부를 직접 가격하는 흉기로 돌변하곤 했다. GM은 1967년 전 차종에 으깨지는 격자형 스틸 메시 구조를 적용, 충돌 시 운전자 반대 방향으로 최대 8.25인치(약 21cm)까지 수축·후퇴하는 에너지 흡수식 스티어링 칼럼을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 자동차 안전 공학의 기념비적 성과로 인정받아 현재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도 전시돼 있다.
1967년 어린이 전용 카시트: 단순 고정용에서 ‘탑승자 보호용’으로
단순 착석 유지가 아닌 충돌 보호 개념을 처음 도입한 1960년대 후반 GM의 ‘차일드 러브 시트(Child Love Seat)’. (GM)
이전까지 유아용 시트는 아이가 차 안에서 돌아다니지 못하게 붙잡아두는 보조용품에 불과했다. GM은 1967년 충돌 사고로부터 어린이를 물리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설계된 전용 안전의자 ‘러브 시트(Child Love Seat)’를 출시했다. 1969년 전용 하네스가 달린 영아용 후향식 시트를 추가하며 오늘날 유아용 카시트 규격의 기초를 닦았다.
1972년 에어백(ACRS): 세계 최초 양산차 탑재
측면 충돌 시 앞좌석 탑승자 간 머리 충돌을 막아주는 GM의 프론트 센터 사이드 에어백. 1972년 최초 양산 에어백 ACRS에 이어 GM 에어백 혁신의 계보를 잇는 대표 기술이다. (GM)
미국 연방 정부의 안전 규제 강화 흐름에 맞춰 GM은 ‘에어 쿠션 구속 시스템(ACRS, Air Cushion Restraint System)’이라는 이름으로 자동차용 에어백을 세계 최초로 양산화했다. 1973년형 쉐보레 임팔라에 시범 적용한 뒤 1974년부터 뷰익, 올즈모빌, 캐딜락 모델에 선택 사양으로 제공했다. 센서 감지로 운전석 스티어링 휠과 조수석 대시보드 하단에서 에어백을 부풀리는 구조로 현대 에어백 시스템의 원형이 됐다.
1977년 하이브리드 III 더미: 전 세계가 쓰는 충돌 인체 모형 표준
1977년 개발되어 현재까지 전 세계 충돌 안전 평가의 표준으로 통용되는 GM의 ‘하이브리드 III(Hybrid III)’ 더미 패밀리. (GM)
충돌 시 인체가 받는 충격을 객관적으로 수치화하기 위해 GM은 1971년 하이브리드 I을 개발한 데 이어, 1977년 체형별 ‘하이브리드 III(Hybrid III)’ 더미 제품군을 완성했다. 신생아부터 체격이 작은 여성(5백분위수), 건장한 성인 남성(95백분위수), 임산부까지 정밀하게 모사한 이 더미 제품군은 현재까지도 전 세계 자동차 안전도 평가 기관과 제조사들의 절대적인 표준으로 통용된다.
1996년 온스타(OnStar): 에어백 터지면 알아서 구조 요청
사고 시 상담원이 긴급 출동을 연계하는 세계 최초의 차량 텔레매틱스 시스템 ‘온스타’. (GM)
인터넷조차 대중화되지 않았던 1990년대 중반, GM은 차량 내 텔레매틱스 통신 모듈을 탑재한 커넥티드 서비스 ‘온스타’를 공개했다. 충돌로 에어백이 전개되면 차량이 스스로 24시간 상담원에게 신호를 보내 구조대를 호출하는 시스템이다. 이후 차량 도난 방지, 원격 진단, 무선 네트워크 기능으로 진화하며 현재 커넥티드 모빌리티의 출발점이 됐다.
2010년대 이후: 운전자 행동 교정과 능동 안전망 구축
전방 충돌 경고, 자동 긴급 제동(AEB) 등 GM이 전 차종에 대중화하고 있는 첨단 능동 안전 시스템. (GM)
GM의 안전 혁신은 승객 간 충돌을 방지하는 ‘프론트 센터 에어백(2011년)’, 뒷좌석 영유아 방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시동을 끌 때 계기판 경고를 띄우는 ‘뒷좌석 승객 알림(2016년)’,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으면 20초간 변속기 레버가 주차(P) 단에서 풀리지 않도록 유도하는 ‘버클 투 드라이브(2019년)’ 등으로 이어졌다.
현재는 자동 긴급 제동(AEB)과 전방 충돌 경고, 차선 유지 보조 등 첨단 능동 안전 사양을 대중 모델까지 기본화하며 하드웨어 충돌 보호를 넘어 사고 자체를 원천 차단하는 지능형 모빌리티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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