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에서 논란이 된 플록 세이프티(Flock Safety) 사례는 자동차가 단순한 이동수단을 넘어 거대한 데이터 생태계의 일부가 된 시대에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플록)
[오토헤럴드 김훈기 기자] 자동차 번호판은 차량을 식별하기 위한 수단이지만 카메라와 데이터베이스가 결합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특정 차량이 언제 어디를 지나갔는지 기록이 장기간 쌓이면서 번호판이 사실상 자동차의 '위치 식별자'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에서 논란이 된 플록 세이프티(Flock Safety) 사례는 이런 위험을 보여준다. 캘리포니아주 산호세에서는 경찰관이 플록의 자동 번호판 인식(ALPR)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해 가정폭력 피해를 주장한 여성의 차량 정보를 무단 조회하고 이를 가해자로 지목된 자신의 사촌에게 전달한 사실이 드러났다.
해당 경찰관은 내부 조사 끝에 해고됐지만 형사 기소되지는 않았다. 특히 시스템에 조회 기록이 남아 있었음에도 무단 사용이 처음부터 자동으로 적발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위치가 노출됐다고 의심한 여성이 신고하면서 조사가 시작됐다는 점에서 데이터 접근 관리의 한계를 드러냈다.
논란은 플록 하나에 그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민간기업도 방대한 차량 위치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다. 디지털 리코그니션 네트워크(DRN)는 2024년 5월 기준 90억건이 넘는 과거 번호판 이미지를 보유했으며 각각의 기록에는 차량 이미지와 촬영 날짜, 시간, 위치가 포함된다.
미국에서 해당 논란이 커지는 배경에는 공공과 민간 데이터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는 데 있다(플록)
이들 정보는 이미 보험과 금융, 차량 회수 등에도 활용된다. 보험사는 차량이 가입 당시 신고한 장소에 실제로 보관되는지 확인하거나 이동 기록을 이용해 보험금 청구와 차량 사용 형태를 조사할 수 있다. 또 차량 사진을 분석해 개인용으로 보험에 가입한 자동차가 상업용으로 이용되는지 확인하는 것도 가능하다.
문제는 각각 별 의미 없어 보이는 기록이 장기간 축적됐을 때다. 매일 밤 같은 장소에서 차량이 발견되면 거주지를, 평일 반복적으로 포착되는 장소에서는 직장을 추정할 수 있다. 여기에 반복적으로 방문하는 장소까지 연결하면 개인의 생활 패턴과 이동 습관을 파악할 가능성이 생긴다.
특히 미국에서 해당 논란이 커지는 배경에는 공공과 민간 데이터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는 데 있다. 플록의 카메라는 경찰뿐 아니라 기업과 주거단지, 아파트, 학교 등에서도 운영할 수 있고 수집된 정보를 경찰과 공유하는 것도 가능하다. 민간에서 수집한 정보가 필요에 따라 법 집행기관의 수사 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는 구조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국내 역시 범죄 예방과 시설 안전, 교통단속 등을 위해 대규모 CCTV 인프라를 운영하고 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전국 216개 지방자치단체 CCTV 통합관제센터에서 관제하는 카메라만 약 60만대에 이른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전국 216개 지방자치단체 CCTV 통합관제센터에서 관제하는 카메라만 약 60만대에 이른다(플록)
물론 국내 CCTV가 미국 플록과 동일한 방식으로 차량 이동 데이터를 축적하고 민간과 경찰 사이에서 공유된다고 볼 수는 없다. 제도와 운영 방식 역시 다르다. 하지만 번호판 자동 인식 기술과 CCTV가 고도화되고 여러 지점에서 수집한 기록을 빠르게 검색할 수 있게 될수록 개별 영상 한 장이 아니라 시간과 위치가 연결된 '이동 데이터'로서 더 큰 의미를 갖게 된다.
국내에서 더 주목할 부분은 자동차 자체도 하나의 데이터 수집 장치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커넥티드카는 위치와 주행 기록을 생성하고 내비게이션과 충전, 주차, 보험 등 차량 주변 서비스에서도 다양한 정보가 만들어진다. 도로의 번호판 인식 정보까지 서로 연결될 경우 각각의 데이터만으로는 알기 어려웠던 차량 이용자의 행동 패턴을 훨씬 구체적으로 파악할 가능성이 생긴다.
이 때문에 앞으로의 논쟁은 단순히 CCTV를 더 설치할 것인지 여부에서 끝나기 어렵다. 범죄 차량 추적과 실종자 수색, 교통 관리 등에서 영상과 차량 데이터가 갖는 공익적 가치는 분명하지만 데이터가 정교해질수록 접근 권한에 대한 관리 역시 그만큼 엄격해져야 한다.
국내에서 더 주목할 부분은 자동차 자체도 하나의 데이터 수집 장치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플록)
특히 누가 어떤 목적으로 차량 정보를 조회할 수 있는지, 조회 사실을 누가 감시하는지, 기록을 얼마나 보관하고 다른 정보와 어디까지 결합할 수 있는지가 중요해진다. 최근 미국 산호세에서 발생한 사건처럼 접근 기록이 남아 있어도 피해가 발생한 뒤에야 오남용 사실을 발견한다면 기술적 감사 장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미국 플록 논란은 자동차가 단순한 이동수단을 넘어 거대한 데이터 생태계의 일부가 된 시대에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이제 중요한 것은 '내 차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알아내는 기술 자체가 아니다. 누가 그 정보를 볼 수 있고 어떤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권한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김훈기 기자/hoon14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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