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미국 앨라배마 공장 생산 라인 전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강력한 환경 규제인 자동차 평균 연비 규제를 대폭 완화하면서 완성차 업계들의 전기차 전략 수정이 풀가피해졌다. (오토헤럴드 DB)
[오토헤럴드 / 김흥식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바이든 행정부 시절 확정된 기업평균연비제도(CAFE) 기준을 대폭 후퇴시키겠다고 26일(현지 시간) 자신의 SNS를 통해 공식 선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새로운 기준은 미국 내 자동차 생산에서의 낭비를 없앨 것"이라며 "이는 차량 가격 인하(LOWER PRICES)로 이어져 소비자들이 과거의 '환경 괴물' 대신 훨씬 더 아름답고 안전한 신차를 구매하며 수천 달러를 절약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바이든 정부는 당초 2031년까지 미국 내 판매 차량의 평균 연비를 갤런당 약 50.4마일(mpg)까지 단계적으로 끌어올리는 강력한 환경 규제를 도입한 바 있다.
내연기관 엔진의 효율 개선만으로는 도저히 맞출 수 없는 수치로 사실상 완성차 업체들에 ‘전기차(EV) 의무화’를 사실상 강제한 규제 장치였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 기준을 34.5mpg 수준으로 대폭 완화하겠다며 전임 정부의 친환경 기조를 전면 백지화하겠다고 선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전기차 의무화 종식’으로 규정하고 복잡한 환경 규제 탓에 치솟았던 신차 가격을 낮추고 미국 내 전통 제조업 일자리를 지키겠다는 명분을 앞세웠다. 하지만 정책 전환의 충격파는 고스란히 글로벌 완성차 업계로 향하고 있다.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들은 지금까지 바이든 정부의 엄격한 연비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부과될 천문학적인 벌금을 피하고 급변하는 전동화 패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앞다퉈 전기차 중심의 체질 개선에 사활을 걸어왔다.
폭스바겐, GM, 포드 등 주요 레거시 완성차 업체들은 수십조 원 단위의 자본을 쏟아부어 엔진 조립 라인을 뜯어내고 전기차 전용 공장으로 전환했고 글로벌 배터리 제조사들과 잇따라 합작법인(JV)을 세워 공급망을 묶어뒀다. 미국 정부의 강력한 드라이브에 맞춰 미래 로드맵 전체를 전동화로 전면 재편한 곳도 있다.
그러나 환경 규제의 대폭 완화로 전기차 투자 비용은 하루아침에 막대한 매몰 비용(Sunk Cost)의 덫으로 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미 구축해 놓은 대규모 전용 공장과 배터리 생산 라인은 심각한 과잉 설비(오버캐파)로 전락할 수 있 있기 때문이다.
순수 전기차 제조사 역시 타격이 불가피하다. 테슬라와 리비안 등은 내연기관 제조사들에 잉여 탄소배출권(크레딧)을 판매해 막대한 현금을 벌어들여 왔다. 그러나 연비 규제 문턱이 낮아지면 배출권 수요와 단가가 급락해 수익 구조에 큰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다.
국내 자동차 및 배터리 업계의 셈법도 한층 복잡해졌다. 현대차와 기아는 고수익 내연기관 모델과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하이브리드(HEV) 라인업을 보유해 단기적인 북미 실적 방어와 연비 과징금 회피가 가능하다는 점은 다행스러운 대목이다.
그러나 중장기 전략 궤도 수정은 불가피하다. 조지아주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등 대규모 전기차 전용 거점의 가동률 저하를 막기 위해 하이브리드 혼류 생산 체제로의 전환을 한층 서둘러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더욱 심각한 곳은 K-배터리 3사다. 북미 합작공장의 배터리 셀 발주 물량이 줄고 라인 전환 압박이 커지면서 기집행됐거나 예정된 천문학적 시설 투자(CAPEX) 계획을 전면 재검토해야 하는 비상 상황에 놓였다.
반면 내연기관과 하이브리드 중심의 ‘속도조절론’을 고수해 온 일본 토요타는 뜻밖의 최대 수혜자가 되고 중국 역시 미국이 내연기관에 안주하는 사이, 유럽과 신흥국 등 비(非)미국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는데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강력한 환경 규제를 유지하는 유럽과 규제를 거둬들인 미국으로 시장으로 '파원트레인'이 이원화하면서 대부분 완성차 업계는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한편 미국에서는 트럼프식 규제 완화가 단기적으로는 미국 소비자의 신차 가격 부담을 덜어줄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SDV(소프트웨어 중심 차)와 고효율 전동화로 대변되는 미래 모빌리티 주도권을 해외 경쟁국에 내어주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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