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선우현정(임상심리전문가/정신건강임상심리사)
지인들의 자녀가 커가면서 물어오는 질문의 종류도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발달상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는 질문이 많았고, 유아기와 학령기 초기에는 영어유치원이나 학원 같이 학습적인 면에 대한 질문이 많았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에 접어드는 아이들이 많아지면서 새로운 질문을 많이 듣게 됩니다.
“아이가 자존감이 높아지려면 어떻게 해주는 게 좋을까?”
흥미로운 질문이었습니다. 주변의 학부모들이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린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자존감’이라는 것은 실체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성장하는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존감이 높은 아이들은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해서 몰두할 수 있습니다. 또 친구들과 의사소통하는 과정에서 생각과 감정을 적절히 조율해서 좋은 관계를 형성해 나가기도 합니다. 공부를 잘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지만 아이는 밝고 건강한 아이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자존감이 높은 아이가 건강한 아이로 성장할 수 있는 이유는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확신이 있는 아이는 자신이 어떤 것을 할 때 즐겁게 몰두할 수 있는지 잘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그 감각 자체를 즐기며 진로를 개척해 나갈 수 있게 됩니다.
다른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도 상대의 의도를 오해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거나 감정을 조절하는 데 능숙한 모습을 보입니다. 자신의 행동이 상대에게 미치는 영향을 잘 알고 있고, 또 상대로부터 어떤 반응이 돌아오게 될지에 대한 믿음도 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는 어떻게 자존감이 높아지게 되는 걸까요?
심리학에서 아이의 자아상 형성에 가장 중요한 것을 고르라고 한다면 당연히 ‘부모’를 가장 먼저 꼽을 것입니다. 부모는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늘 곁에 있는 가장 중요한 타인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부모를 통해 자신에 대한 상을 만들고, 부모와의 관계 속에서 다른 사람들에 대한 믿음을 형성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과정을 ‘반영’(mirroring)이라고 부르는데, 마치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중요한 타인으로부터 돌아오는 반응을 통해 자신과 세계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해 나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모의 건강한 반영은 아이로 하여금 긍정적이고 단단한 자아상을 만들게 하고, 이는 자신에 대한 존중감으로 발전합니다.
반영은 특정한 시간에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일상생활 전반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것이고, 부모의 모든 태도로부터 나타납니다.
자녀의 말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인다
자녀를 존중하는 부모는 아이의 말을 그저 ‘아이의 말’로 치부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그 말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늘 진심 어린 관심을 갖고 들어줍니다. 이것은 부모의 비언어적인 태도에서부터 잘 드러나죠. 아이가 말을 하는 동안 하고 있던 일을 멈추고 아이가 있는 쪽으로 몸의 방향을 맞추는 것, 아이의 눈높이에 맞게 허리를 숙여 시선을 맞추는 것, 별 의미 없어 보이는 말이라도 진정성 있게 대답을 해주고 끝까지 들어주는 것 등등입니다.
잠시 우리들의 평소 모습을 돌아보면 의도치 않게 아이의 말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고 있던 청소를 계속해야 하기 때문에 아이를 돌아보지 않게 되고, 분주한 상태에서는 아이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건성으로 대답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이는 언성을 높이고 부모의 관심을 끌려는 시도를 하게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아이를 존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이러한 사소한 비언어적인 태도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부정적인 평가로 상처 주지 않는다
물론 건강한 반영은 주로 언어를 통해 표현됩니다. 당연히 아이를 무시하는 말은 삼가야 합니다. “네가 그럴 줄 알았다.”, “또 시작이네.”, “너 만날 그렇게 하잖아.”와 같이 아이의 속성 자체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말이 가장 위험합니다. 아이는 처음에 억울한 마음이 들고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나는 그런 아이가 아니야’하는 마음을 느끼겠지만 이러한 부정적인 평가가 반복될 경우 아이의 무의식 깊은 곳에 그런 말이 자리 잡게 됩니다.
물론 부모도 사람이기에 감정적인 상태가 되면 이런 상처를 주는 말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의도치 않게 상처 주는 말을 했다면 반드시 아이에게 이 말에 대한 사과와 설명을 해줘야 합니다. 홧김에 한 말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아이가 그동안 해왔던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며, ‘너는 그런 아이가 아니다’라는 것을 정성껏 설명해 줘야 합니다. 단순한 사과는 의미가 없습니다.
아이를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시킨다
아이를 존중하는 부모는 또한 수시로 아이의 생각을 묻습니다. 부모가 정한 규칙을 수동적으로 따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의사결정 과정에 아이를 하나의 구성원으로 참여시키는 것이죠. 그 과정에서 자연히 아이는 자신이 가족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됩니다.
어릴 때는 아이가 먹고 싶은 간식 메뉴를 고르게 하고, 커서는 여행 가고 싶은 장소를 고르거나 다니고 싶은 학원을 선택하게 하는 등 아이가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는 무궁무진합니다. 아이는 우리의 소유물이 아니고 우리 가족의 중요한 구성원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사실 이렇게 이야기하다 보면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는 기술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늘 마음 깊은 곳에서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는 태도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이를 존중하는 진심이 담긴 태도는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되고, 그 결과 아이는 자기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게 됩니다.
글= 선우현정(임상심리전문가/정신건강임상심리사 sunu84@hanmail.net)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일하고 있는 임상심리사입니다. 특히 아동/청소년의 정신건강에 주력하고 있고 이와 관련한 소통을 환영합니다.
방수호 기자/bsh2503@manzla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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