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오는 어린아이들 중 다수는 막연한 불안감을 호소합니다. 혼자 있는 것을 무서워하는 정도의 가벼운 문제부터 학교에 가는 것을 거부하거나 강박적인 행동을 보이는 심한 경우까지 증상의 정도는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불안이 높은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평소 기분이 좋지 않은 채로 보내는 시간이 더 많고, 부모에게 불편한 마음을 호소하거나 의지하려고 하는 행동도 자주 보이기 때문에 아이와 부모 모두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이처럼 높은 불안을 호소하는 아이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목표로 삼아야 하는 것
불안은 완전히 없앨 수 있는 속성의 것일까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불안은 일종의 경계신호로, 외부 위험요소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기능을 합니다. 또, 불안은 우리에게 어느 정도의 긴장감을 주기 때문에 과제에 대한 집중력을 높이고 최상의 능력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때문에 불안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불안이 없어지는 것은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주요 기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불안은 없애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이 아니고, 불안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 불안에 의해 일상생활이 방해받지 않고, 적정 수준에서 관리할 수 있도록 완화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어떤 것부터 해야 할까?
아이가 반복적인 불안감을 호소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소아정신과 전문의를 만나보는 것입니다. 아이의 증상이 일시적이고 가벼운 문제인지, 부적응으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의 신호인지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불안은 일상생활에서도 흔히 느껴지는 감정 중 하나이기 때문에 가벼이 여기고 넘어가는 경우가 있지만 때로는 다른 심각한 병리적인 문제를 예고하는 증상일 수도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 전문의의 안내에 따라 빠른 시일 내에 치료적 개입을 해야 하며, 적기를 놓칠 경우 문제가 깊어져서 회복이 더욱 어려울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합니다.
불안 대상의 단계적인 노출
전문의의 소견을 들은 후에 가정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은 '환경적인 개선'입니다. 사실 불안의 원인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유전입니다.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들을 종합하면 불안이 높은 아이들은 불안과 관련된 가족력이 있는 경우가 흔하고, 어렸을 때부터 주변 자극에 민감한 기질적 특성을 타고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타고나는 경향성을 고치려는 시도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대신 이를 보완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아이들마다 불안감을 촉발시킨 대상이 있습니다. 이미 불안에 대한 민감성을 타고나기도 했지만 어떠한 촉발 요인에 의해 불안감이 활성화되기 시작하고, 그것이 꾸준히 유지되거나 그 대상 범위가 확장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비가 많이 오는 날 새벽에 잠에서 깼을 때 곁에 아무도 없다는 것에 놀란 아이는 이후 비가 오는 소리만 들어도 불안감을 호소할 수 있습니다. 혹은 갑자기 날아든 비둘기 때문에 깜짝 놀란 아이는 새가 있는 모든 공간에 가는 것을 무서워할 수 있습니다. 이때 부모는 크게 두 가지 반응을 보이는 것이 일반적인데, 하나는 아이가 불안해하는 대상을 완전히 차단시켜 보호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불안해하는 대상에 자꾸만 노출시켜서 극복할 수 있길 기대하는 것입니다. 먼저, 불안 자극을 완전히 회피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방법입니다. 그리고 불안감 완화에도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회피는 역설적이게도 불안감이 지속되도록 돕기 때문입니다. 불안이 높은 아이들은 불안을 느끼는 대상에 대해 비현실적인 부정적 사고를 지니고 있는데,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반드시 불안한 대상을 직면하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불안이 느껴지는 상황에서도 “저건 무서운 게 아니야”,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을 거야”, “나는 해낼 수 있어”라는 생각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어떠한 경험을 해야만 합니다. 불안을 느끼게 하는 대상을 지속적으로 회피하면 불안과 관련된 부정적인 사고가 진실이 아님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불안을 느끼는 대상에 과도하게 노출시키는 시도도 좋은 방법은 아닙니다.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과도한 자극을 맞이하면 이성적인 회로보다는 감정적인 회로가 활성화되기 쉽습니다. 위협적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인지적인 판단이 필요한데 과도한 노출은 지나친 긴장감으로 인해 “무섭다”, “두렵다”는 느낌에만 압도되는 패닉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이죠. 따라서 아이를 불안 대상에 노출시킬 때에는 단계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이는 실제 치료 장면에서도 활용하는 기법으로, 아이와 의논해 불안을 느끼는 상황을 가장 긴장감이 낮은 단계부터 높은 단계의 순서로 기록하고, 가장 낮은 단계부터 순차적으로 경험하게 해 천천히 불안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부모가 건강한 모델링 대상 되기아이의 불안감 완화에는 부모의 반응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불안한 자녀의 부모는 스스로도 불안감이 높은 경향이 있어서 의도치 않게 자녀를 과잉보호할 수 있습니다.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에 대해 과도하게 주의를 주거나 사소한 일도 부모가 대신해 주는 등 자녀를 지나치게 보호하는 행동은 불안감을 가중시킵니다. 부모의 철저한 행동들로 인해 아이는 “세상은 위험한 곳이야”, “나는 너무 나약한 존재야”, “나 스스로는 할 수 없어”라는 신념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평소 부모가 “너는 아직 어리고 약하니까 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행동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잘 돌아봐야 합니다. 이와 함께 부모가 위협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하는지 보여주는 것도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위기 상황에서 부모의 대처는 아이들에게 그대로 학습되기 때문에 부모가 안절부절못하고 감정적인 반응만 보인다면 아이들은 응당 불안에 그렇게 대응해야 하는 것으로 배우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위기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대응하고 과도하게 불안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은 아이들에게 좋은 모델링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글 = 선우현정(임상심리전문가/정신건강임상심리사)정신건강의학과에서 일하고 있는 임상심리사입니다. 특히 아동/청소년의 정신건강에 주력하고 있고 이와 관련한 소통을 환영합니다.
길문혁 기자/ansgur0317@manzla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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