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바다처럼 검은 벌판 위, 하얀 집들이 별처럼 박혀 있다. 그 사이로 바람만이 지나가는 섬, 란사로테로 향했다.
기분 좋은 바람에 자꾸만 양팔을 펼치고 눈을 감았다. 여름날이면 바다 건너 사하라 사막의 열기가 온몸을 휘감는데, 이상하게도 숨이 편한 섬이다. 구름은 산머리를 스치기 바쁘고, 호숫가의 잔물결도 파도처럼 일렁이는 곳. 하루 종일, 한 해 내내 바람이 멈추지 않는 섬 '란사로테(Lanzarote)'다.
란사로테에서 동행한 가이드 오넬리아(Onelia)는 말했다. "알리시오스(Alisios)*가 없었다면 우린 여기서 살 수 없었을 거예요." 란사로테는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의 섬 가운데 하나로, 아프리카 대륙 해안에서 불과 125km 떨어져 있다. 사하라 사막과 이렇게 가까운데도 산뜻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알리시오스가 더위를 식혀 주는 덕분이다.
아프리카에 가깝지만 카나리아 제도는 엄연한 스페인 땅이다. 마드리드에서는 비행기로 2시간 40분 안팎이면 닿는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직항이 없어 적어도 한 번은 갈아타야 하고, 환승 대기까지 더하면 하루 가까이를 하늘과 공항에서 보내는 게 다반사다. 란사로테가 있는 카나리아 제도는 인천공항에서 직선거리로 재면 약 1만 1,500km. 본토의 어느 도시보다 먼,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 스페인인 셈이다.
그중 란사로테는 서양인에게는 이미 이름난 휴양지다. 하지만 동양인 여행자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글자로만 접하면 낯선 여행지지만, 막상 발을 디디면 꽤 친숙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바람과 돌, 여자가 많다는 삼다도, 제주를 닮았다. 바람은 말할 것도 없고 돌도 많다. 화산이 남긴 현무암이 섬 곳곳을 덮고 있다.
제주와는 사뭇 다른 장면도 분명 있다. 먼저 불과 300년 전에 굳은 용암 벌판이다. 1730년 9월 1일 밤, 땅이 열리고 용암이 솟구쳤다. 분화는 끊어졌다 이어지기를 반복하며 1736년까지 여섯 해 동안 계속됐고, 섬의 약 4분의 1이 용암과 화산재로 뒤덮였다. 그 땅의 일부는 지금 티만파야 국립공원으로 묶여, 버스 한 대가 지날 길이 난 것 말고는 사람의 손을 거의 타지 않은 채 보존돼 있다.
또 하나, 제주에는 없는 게 더 있다. 마을에 들어서면 짜 맞춘 듯 하얀 집들이 낮게 이어지고, 대문과 창틀은 하나같이 초록이나 파랑인 풍경이다. 검은 벌판 위 하얀 집들. 섬 전체가 약속이라도 한 듯 만들어 낸 이 풍경에는 한 사람의 이름이 숨어 있다.
*알리시오스: 북동쪽에서 일정하게 불어오는 무역풍을 뜻하는 스페인어
란사로테 Lanzarote
위치: 대서양 카나리아 제도의 동북쪽. 아프리카 북서부 해안에서 약 125km
소속: 스페인 카나리아 자치 지역 라스팔마스주
크기: 면적 845.94㎢, 남북 약 60km·동서 약 25km
주도: 아레시페(Arrecife). 섬 인구 16만 6,878명(2025년 기준)
이름의 유래: 14세기 초 섬에 닿은 제노바 항해가 란첼로토 말로첼로(Lancelotto Malocello)의 이름
기후: 연 강수량 약 100mm의 아열대 사막 기후로 1년 내내 바람이 분다
특징: 섬 전체가 1993년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2015년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
"만리케를 아세요?"
바람과 돌, 그다음으로 란사로테에서 가장 많이 마주하게 되는 건 한 사람의 이름, 세사르 만리케(César Manrique)다. 그가 섬을 통째로 산 것도, 다스린 것도 아닌데 그의 손길과 말 한마디가 섬 구석구석 스며 있다.
1919년 4월 란사로테 아레시페에서 태어난 만리케는 마드리드 산페르난도 왕립미술아카데미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마드리드와 뉴욕에서 화가로 활동했다. 1966년 고향에 돌아온 그는 뉴욕을 두고 "인간은 이런 인공적인 곳을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라고 말하며, 남은 생은 한 가지 답을 찾기 위해 매진했다. 바로 고향의 자연과 역사를 해치지 않고 아름답게 살아갈 방법이었다.
만리케가 이 고민을 시작할 무렵만 해도 란사로테에서는 어업과 농업이 거의 유일한 생계 수단이었다. 가뭄이 들면 사람들은 살길을 찾아 바다 건너로 떠났다. 하지만 섬 곳곳에 만리케의 예술이 깃들기 시작하자, 작은 섬의 광활한 자연은 그의 미감을 입고 여행자를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1980년 20만 명이 채 안 되던 관광객은 10년 뒤 100만 명을 넘었고, 지금은 한 해 34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 섬이 됐다.
검은 벌판 위 하얀 집
란사로테에는 오래전부터 검은 화산암 들판 위에 낮고 하얀 집이 띄엄띄엄 놓여 있었다. 눈이 부실 만큼 하얀 벽은 석회칠이었다. 흰 벽이 강한 햇빛을 튕겨 내 집 안을 시원하게 지켜 주었고, 석회는 값이 저렴해 가난한 농가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식수가 귀한 섬이라 깨끗한 석회 지붕과 마당에 떨어진 빗물을 모아 마셨다. 대문과 창틀에 칠한 초록색 페인트는 당시 가장 값이 저렴했고, 해안 마을의 문이 대개 파란색인 이유는 어부들이 배를 칠하고 남은 색을 칠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바닷가 마을에는 파란색 문이, 내륙에는 초록색 문이 많다.
만리케는 이 집들을 '현지인의 오랜 관찰에서 나온 지혜'라고 봤다. 관광 개발 바람이 불면서 섬이 무분별한 개발로 뒤덮일까 두려웠던 그는 란사로테만의 풍경을 지키고자 했다. 당시 섬 정부 대표였던 페핀 라미레스(Pepín Ramírez)와 손잡고 고층 호텔과 도로변 광고판을 막는 규제를 이끌어 냈다. 한편으로는 마을 사람을 한 명 한 명 찾아가 "지금의 집이 아름다우니 부디 지켜 달라"고 설득하기도 했다.
이처럼 그는 사람들이 일군 풍경을 보존하면서, 란사로테의 자연 속에 사람이 머물기를 바라는 건축물도 지었다. 그가 란사로테에 남긴 건축물에는 공통점이 있다. 자연이 만든 지형을 부수지 않고 그 안에 공간을 들였다는 것. 용암 동굴과 바다 앞 절벽이 모두 그의 캔버스였다. 들어서는 순간 '이게 건물이야, 자연이야?'라는 물음이 절로 나오는 곳들을 따라가 본다.
농가가 미술관이 되기까지, 농부의 집 박물관
섬 한가운데 마을 모사가(Mozaga)에 높이 15m의 하얀 조형물이 서 있다. 만리케의 작품 '풍요(Fecundidad)'다. 폐기될 배에서 나온 낡은 물탱크와 부품을 엮어 만들었다. 비 적고 바람 센 땅에서 화산토를 일구며 살아온 농민에게 바친 작품이자, 1968년 시작된 농부의 집 박물관(Casa-Museo del Campesino) 프로젝트의 상징이다.
조형물 옆으로는 옛 농가가 이어진다. 빗물을 모으던 납작한 지붕과, 바람과 볕을 막는 두꺼운 벽, 안뜰과 포도 압착기까지. 섬사람들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한눈에 볼 수 있다. 살림살이는 군더더기 없이 단정해 마치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예술가의 집처럼 보이기도 한다.
장인 광장(Plaza de los Artesanos)에서는 섬에 자리 잡은 로컬 수공예를 가까이서 만날 수 있다. 야자수 잎 공예, 도자기, 수제 비누 공방이 모여 있어 장인이 작업하는 모습을 보고 체험할 수도 있다. 시간을 보낸 뒤에는 농부의 집 박물관에 마련된 레스토랑에 앉아 쉬어 갈 수 있다. 섬에서 난 재료로 만든 란사로테 가정식에 수제 치즈와 란사로테 원산지 와인을 곁들일 수 있다.
용암이 만든 구멍을 이은 집, 세사르 만리케 재단
타이체(Tahíche)의 용암 벌판을 걷던 만리케는 1730년대 대분화가 남긴 공동(空洞) 5개를 발견한다. 그는 용암이 식으며 가스가 빠져나간 자리에 생긴 커다란 빈 공간을 사람이 사는 곳으로 바꿨다. 굴들을 잇고 그 위에 란사로테 전통 가옥에서 영감을 받은 건축물을 얹었다. 1968년 짓기 시작해 1969년 입주한 '타로 데 타이체(Taro de Tahíche)'다.
만리케가 가장 오래 머문 집으로, 그는 이곳에서 1988년까지 20년을 살았다. 1992년부터 이곳은 세사르 만리케 재단(César Manrique Foundation)으로 문을 열고 여행자를 맞고 있다. 동굴 거실과 수영장, 작업실을 구경할 수 있고, 그의 삶과 예술관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과 이야기도 전시돼 있다. 걷다 보면 검은 화산암과 초록빛 식물이 한 공간에서 어울리는 장면에 자꾸 발이 멈춘다.
강처럼 보이는 바다 위 숨은 전망대, 미라도르 델 리오
란사로테와 그라시오사섬(La Graciosa) 사이의 해협 '엘 리오(El Río)'가 내려다보이는 전망대다. 섬과 섬 사이가 가깝다 보니, 바다가 아닌 강처럼 보여 '미라도르 델 리오(Mirador del Río, 강 전망대)'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란사로테 북쪽 끝 파마라 절벽(Risco de Famara) 꼭대기에 만리케가 지은 전망대로, 밖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 숨은 공간이다.
건물을 절벽에 파묻고 화산석으로 덮어 풍경 속에 숨겼다. 전망대 건물 입구로 들어서면 굽이치는 동굴 같은 복도가 나오다 갑자기 커다란 창이 눈앞에 펼쳐진다. 야외 테라스로도 나가 전망을 볼 수 있는데, 절벽 위라 바람이 세니 조심해야 한다.
채석장에 피어난 원형 극장, 선인장 정원
만리케가 섬에 남긴 마지막 작품으로 꼽히는 곳은 섬 동북부 과티사(Guatiza)의 선인장 정원(Jardín de Cactus)이다. 화산재를 캐내던 채석장 자리를 계단식 원형 극장처럼 다듬었다. 채석으로 생긴 검은 화산암 절벽과 흔적 일부는 그대로 두고, 그 사이에 다섯 대륙에서 온 선인장 500여 종을 심었다. 처음 선인장을 심은 날은 1989년 1월 18일. 그날 심은 선인장 한 그루는 지금도 기념품점 앞에서 자라고 있다.
채석장이었던 과거 말고도 또 다른 역사도 하나 더 깃들어 있다. 정원 가장 높은 곳에 서 있는 19세기 풍차가 그 주인공이다. 카나리아 제도에서 오래전부터 먹어 온 볶은 곡물 가루 '고피오(gofio)'를 빻던 풍차로, 지금은 전망대 역할을 한다.
유리처럼 멈춘 물이 만드는 반영, 하메오스 델 아구아
약 2만 1,000년 전, 라코로나(Volcán de La Corona) 화산의 용암이 흘러 만들어진 굴이 해안까지 이어진다. 천장 일부가 무너져 커다란 구멍이 뚫렸고, 그 사이로 하늘이 보이고 빛이 쏟아진다. 만리케는 이 풍경에 반해, 버려진 동굴 속에 수영장과 레스토랑, 공연장을 들였다. 하메오스 델 아구아(Jameos del Agua)의 대표 스폿은 동굴 한가운데 유리처럼 굳은 잔잔한 호수다. 물의 움직임이 거의 없어 바로 위 풍경이 거울처럼 비친다. 바닷물이 암반 틈으로 스며들어 생긴 호수라, 수위가 밀물과 썰물을 따라 오르내린다.
물속에는 하얀 점들이 반짝이는데, 몸길이 1cm쯤의 눈먼 게(Munidopsis polymorpha)다. 이 동굴에만 사는 고유종이다. 용암동굴의 천장과 벽을 그대로 무대로 쓴 공연장에서는 지금도 음악회가 열리고, 레스토랑에서는 란사로테 식재료로 만든 카나리아 요리를 즐길 수 있다.
300년 전 불이 지나간 자리
만리케의 손길이 닿기 전, 란사로테의 풍경은 어땠고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용암이 지나간 자리는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날 듯한 길 위로 버스가 구불구불 나아간다. 창밖은 도시도 시골도 아니다. 붉고 검은 사막 같은 풍경 사이로 화산이 끝없이 솟아 있다. 18세기에 여섯 해 동안 이어진 분화의 흔적, 티만파야 국립공원(Parque Nacional de Timanfaya)이다. 총 면적은 51.07㎢로 제주에 있는 우도의 약 8배 크기다. '작은 섬이 어떻게 이리 광활한 자연을 품었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국립공원은 누구나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아니어서, 일반 여행자는 국립공원을 가로지르는 버스 루트로만 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여행의 시작점은 이슬로테 데 일라리오(Islote de Hilario)다. 여기서 약 14km 길이의 '화산 루트(Ruta de los Volcanes)' 버스가 출발한다. 다국어 오디오 해설을 들으며 30분 넘게 달리는 동안, 창밖으로 분화구와 굳은 용암의 주름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스쳐 지나간다. 운영 시간은 매일 9시부터 15시 45분까지, 버스는 2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현장 매표 없이 온라인 사전 예매만 가능하다. 예매한 시간에 맞춰 입장해야 하니 15분 전에 여유 있게 도착하는 게 좋다.
티만파야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다면 CACT의 프리미엄 투어 '몬타냐스 델 푸에고 인솔리타 익스피리언스(Montañas del Fuego Insólita Experience)'를 고르면 된다. 월·수·토요일 오전 8시 45분에 출발하는 소수 정예 투어로, 공식 가이드와 함께 일반 관람객은 들어갈 수 없는 몬타냐 라하다(Montaña Rajada)에도 들러 바람 소리만 들리는 분화구를 내려다볼 수 있다. 투어가 끝나면 란사로테산 식재료로 만든 음식과 와인을 맛보는 시간도 있다.
멈춘 화산이 남긴 여운, 지열로 완성하는 체험
란사로테의 화산은 멈췄지만 땅은 여전히 뜨겁다. 티만파야 국립공원의 땅속 13m 아래로 내려가면 그 온도가 100~600℃에 이른다. 이슬로테 데 일라리오에서는 이 열을 눈앞에서 보여 주는 시연이 열린다. 직원이 땅에 박힌 파이프 속으로 찬물을 부으면, 몇 초 뒤 '펑' 소리와 함께 수증기 기둥이 하늘로 솟구친다. 구덩이 안에 마른 덤불을 넣으면 순식간에 불이 붙기도 한다.
그 열로 고기를 굽는 레스토랑도 있다. 시연하는 곳 바로 위, 만리케가 1970년에 설계한 엘 디아블로 레스토랑(El Diablo)이다. 깊이 5m의 구덩이 위에 쇠 그릴을 얹었다. 가스도 전기도 필요 없다. 아래에서 올라오는 약 250℃의 열로만 굽는다. 레스토랑으로 들어가면 돌과 유리로 지은 원형 홀의 통창 너머로는 화산이 남기고 간 벌판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대표 메뉴는 껍질째 삶아 소금을 입힌 주름감자 '파파스 아루가다스(papas arrugadas)'와 카나리아 전통 소스 '모호 로호(mojo Rojo)', 그리고 지열로 구운 고기와 소시지다.
화산재 구덩이 속 열매 맺은 포도
화산 폭발이 휩쓸고 간 땅은 농사를 짓기에 녹록지 않았다. 흙 위로는 화산재가 두텁게 쌓였고, 바람은 시도 때도 없이 불었고, 비는 적었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찾아낸 게 화산재를 깊이 파고 내려가 그 아래 흙에 포도나무를 심는 방법이다. 지표면을 덮은 검은 화산재 '피콘(picón)'은 빗물을 빨리 머금고 증발을 막아 땅을 촉촉하게 지켜 줬다.
이번에는 바람이 문제였다. 구덩이가 어느 정도 바람을 막아 주긴 했지만 더 튼튼한 방패가 필요했다.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화산암을 반원형으로 쌓아 올렸다. 구멍이 숭숭 뚫린 돌 틈으로 잔바람은 드나들고 거센 바람은 막혔다. 현지에서는 이 돌담을 '소코(zoco)'라고 부른다. 검은 들판 위에 초승달 모양 구덩이가 끝없이 반복되는 이 일대가 라 헤리아(La Geria)다. 지금은 보호경관지역으로, 그 자체로 거대한 대지 미술처럼 보인다.
이렇게 자란 포도로 만든 와인은 1994년 란사로테 원산지 명칭(DO Lanzarote)으로 공식 인정받았다. 대표 품종은 화산 토양의 이름을 딴 말바시아 볼카니카(Malvasía Volcánica)다. 란사로테 와인을 시음하고 구매할 수 있는 곳 중 하나는 와이너리인 '보데가스 베가 데 유코(Bodegas Vega de Yuco)'. 포도밭을 일구던 조부모에게서 와인에 대한 애정을 물려받은 라파엘 에스피노 쿠르벨로(Rafael J. Espino Curbelo)가 1997년 티나호 라 베게타(La Vegueta)의 작은 창고에서 시작했다.
지금은 섬 곳곳의 농가 250여 곳에서 포도를 받아 20종이 넘는 와인을 만든다. 가장 유명한 건 2005년 나온 '에센시아 야이사(Esencia Yaiza)'다. 무라노 유리공예에서 영감을 받은 파란 병이 한눈에 띄어 섬의 아이콘이 됐다. 가이드 투어를 예약하면 포도밭 이야기를 듣고 옛 양조장을 둘러볼 수 있다. 주인장이 시기에 맞춰 고른 친환경 와인 두 종과 곁들이기 좋은 초콜릿을 함께 제공한다.
400개의 노점이 열리는 장터 테기세 마켓
1418년에 세워진 테기세(Teguise)는 란사로테를 넘어 카나리아 제도에서 가장 먼저 생긴 마을 중 하나다. 1847년 항구 도시 아레시페에 자리를 넘기기 전까지 줄곧 란사로테의 수도였다. 골목을 거닐면 만리케가 지키고자 했던 바로 그 풍경을 만날 수 있다. 하얀 벽과 초록 문이 돌담길을 따라 이어지고, 15~18세기에 지은 성당과 저택이 광장을 둘러싼다.
평소에 고요한 이 마을은 일요일 아침만 되면 여행자와 주민들로 붐빈다. 매주 일요일 9시부터 14시까지 열리는 테기세 마켓(Mercadillo de Teguise) 때문이다. 옛 시가지 골목에 400개가 넘는 노점이 들어서는, 규모로도 유럽에서 손꼽히는 크기다. 옷과 수공예품, 농산물, 현지 음식, 기념품이 나란히 놓이고, 한쪽에서는 카나리아 전통 음악과 춤 공연이 흥겹게 펼쳐지기도 한다.
기념품을 고른다면 란사로테에서만 구할 수 있는 것을 골라 보자. 란사로테에서 키운 알로에로 만든 화장품, 섬의 풍경을 아기자기하게 담은 티셔츠와 마그넷, 만리케가 디자인한 악마 캐릭터 펜던트가 달린 팔찌까지. 담다 보면 장바구니가 금세 가득 찬다.
바다 앞 하얀 마을에 짐을 풀다, 씨사이드 로스 하메오스
한참 란사로테를 돌아다니느라 분주했다면 이제 한숨 쉬어 갈 차례다. 란사로테 공항에서 차로 10분 거리, 섬 동남쪽 푸에르토 델 카르멘(Puerto del Carmen)의 황금빛 해변 플라야 데 로스 포시용스(Playa de los Pocillos) 앞에 4성급 호텔 씨사이드 로스 하메오스(Seaside Los Jameos)가 있다. 쉬면서도 볼거리를 놓치고 싶지 않은 여행자를 위한 베이스 캠프다.
4층의 낮은 건물, 온통 하얀 외벽과 파란 문틀은 섬의 전통 건축 양식을 그대로 따랐다. 만리케가 지키려 했던 섬의 모습이 호텔에도 이어진 셈이다. 우드톤이 돋보이는 탁 트인 로비는 카나리아의 전통 안뜰을 옮겨 왔다. 호텔 건물들은 아열대 식물이 우거진 정원과 수영장을 둘러싸고, 500여 개 객실에는 모두 테라스나 발코니가 달려 있다. 해가 뜨는 곳부터 지는 곳까지 호텔이 모두 감싸고 있다. 정원과 수영장, 바다 중 어느 쪽을 내다볼지, 전망을 고르기만 하면 된다.
호텔과 해변 사이에는 담장과 대문이 있어 투숙객만의 공간이 아늑하게 분리돼 있다. 문만 나서면 바로 해변과 식당, 상점이지만, 굳이 나가지 않아도 안에서 대부분 해결된다. 수영장과 스파, 뷔페와 레스토랑, 바, 수영복·기념품 상점, 세탁실, 연회장까지 머무는 데 필요한 시설을 고루 갖췄다. 이곳의 대표적인 식사 선택지 중 하나는 저녁 뷔페다. 란사로테 바다에서 갓 잡은 생선을 즉석으로 구워 주고, 주문 즉시 햄버거와 파스타도 만들어 주는 라이브 스테이션이 강점이다. 조식만 포함한 요금부터 하프보드, 올인클루시브까지 일정에 맞춰 선택하면 된다.
글·사진 남현솔 기자
취재 협조 스페인 관광청(Turespaña), 란사로테 관광청(Turismo Lanzaro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