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집이나 차만큼이나 나를 드러내는 것. 그것은 바로 손에 든 휴대전화일 것이다. 스마트폰이라고 불리는 이것이 보여주는 화면은 우리의 모든 생활을 바꿨다. 때문에 우리는 더 좋은 기능의 휴대전화를 원한다. 카메라의 화질이 얼마나 되지? 속도는 얼마나 빠르지?
음료나 맥주를 리뷰하는 마시즘이 서론이 길었다. 마시는 것에만 관심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새로운 기기는 설레는 법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넘어온 세계에 5,000대 한정으로 생산된 휴대전화가 내 손에 들어오는데 흥분하지 않을 수가 있는가. 바로 이것.

세계 최고의 맥주회사 ‘하이네켄’이 만든 휴대폰이다. 으잉. 이거 그냥 00년대 폴더폰 아니냐고?
맥주의 적은 언제나 스마트폰

이 제품은 하이네켄에서 만든 ‘보링 폰’이다. 이름의 뜻은 ‘지루한 폰’이라는 뜻. 스마트폰에서 당연히 되는 기능들이 이 휴대폰에는 없다. 오직 전화와 문자, 그리고 몇 가지의 기능이 있을 뿐이다. 이런 시대착오적인 휴대전화를 왜 맥주회사가 만든 것일까?
그것은 맛있는 맥주의 적이 스마트폰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스마트폰에 빼앗기는 주의력과 시간이다. 맥주는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대표적인 술이다. 하지만 술자리에 모여도 스마트폰만 쳐다보는 일들 때문에 맥주와 인생을 맛있게 음미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뭉쳤다. 네덜란드의 맥주회사 ‘하이네켄’과 미국의 크리에이티브 그룹 ‘보데가’. 마지막으로 한때는 휴대전화의 왕이었던 ‘노키아’를 생산하는 핀란드의 HMD다. 그들은 맥주를 마시는데 집중하기 위해 가장 최소한의 기능으로 멋지고 위트 있는 이 휴대전화를 만들었다.
이들의 메시지와 멋진 보링 폰의 외관에 이걸 덜컥 사버렸다. 그런데 정말 지루하기만 하면 어쩌지.
기능은 없지만 감성과 위트가 가득

하이네켄 보링 폰은 폴더폰을 경험해 본 나에게는 추억의 디자인, 스마트폰으로 휴대전화를 시작한 어린 친구들에게는 낯설고 멋진 디자인이다. 버튼을 눌러 전원을 켰더니 맙소사.
단순한 음질의 음악과 함께 하이네켄 도트화면이 나오는데. 기절할 뻔했다. 시간여행을 온 것 같아.

보링 폰에는 정말 몇 가지 기능이 없다. 통화, 문자, 달력, 알람, 카메라정도다. 카메라는 심지어 30만 화소인데 현대인들이 사용하는 스마트폰의 화소가 1000만 대에서 억대까지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소박한 화질이다. 그런데 막상 찍어보니.
고해상도의 사진보다 더 감성적이다. 이런 사진은 필터로도 만들기가 쉽지 않은데?


인터넷이나 유튜브는 없지만 재미있는 기능들도 가득하다. 예를 들면 DIY Taxi call 같은 기능이다. 술집에서 하이네켄을 마시면 택시를 미리 잡아주는 기능인가 싶었는데. 버튼을 누르자 이런 메시지가 나온다.
“스텝 1. 바텐더의 주의를 끈다. 스텝 2. 택시를 불러달라고 부탁한다. 스텝 3. 자랑스러워한다.”
누르는 순간 빵하고 터지는 유머코드가 담겨있다. 이 외에도 맥주를 마시다가 내가 응원하는 스포츠팀이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하는 기능(잘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심심할 때 잠깐 할 수 있는 게임(1단계 밖에 없어서 잠깐만 가능)도 들어있다. 맙소사. 이 센스는 어떡할 거야?
디톡스가 아니라 또 다른 행복을

분명히 지루한 폰이라고 했는데, 지루할 틈이 없다. 하이네켄에서 만든 이 휴대전화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노래를 듣거나 유튜브를 보는 대신 주변의 풍경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디지털 디톡스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한 요즘 시대. 하이네켄의 보링 폰을 쓰며 깨닫게 된다. 스마트폰을 멀리 하는 것은 도파민을 참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종류의 행복을 찾아가는 거라고. 물론 이것은 보링 폰이 있어야만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스마트폰에게 빼앗긴 시간을 조금만 더 챙긴다면 인생을 더 깊게, 맥주를 조금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시간들이 가득하지 않을까?
<제공 : 마시즘>